송무백열(松茂柏悅)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백열록(柏悅錄)'이란 책이 있다. 근세 금명(錦溟) 보정(寶鼎·1861~1930) 스님이 대둔사에 머물면서 본 귀한 글을 필사해 묶은 것이다. 모두 74쪽 분량에 다산의 글만 해도 '산거잡영(山居雜詠)' 24수와 '선문답(禪問答)', 그 밖에 승려들에게 준 제문과 게송 등 모두 10편이 실려 있다. 대부분 문집에 빠지고 없는 글이다. 초의의 '동다송(東茶頌)'도 수록되었다.
책 제목인 '백열(柏悅)'의 뜻이 퍽 궁금했다. 찾아보니 육기(陸機·260~ 303)가 '탄서부(歎逝賦)'에서 "참으로 소나무가 무성하매 잣나무가 기뻐하고, 아! 지초가 불타자 혜초가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라 한 데서 따온 말이었다. 송무백열(松茂柏悅)은 뜻을 같이하는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함께 축하해 주는 뜻으로 쓰고, 지분혜탄(芝焚蕙歎)은 동류의 불행을 같이 슬퍼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보정 스님은 대둔사에서 좋은 글을 보고 매우 기뻐 같이 보려고 '백열록'으로 묶었다. 이를 통해 다산이 불교계와 맺은 깊은 인연 한 자락이 새롭게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 옛글에서도 이 말은 자주 쓰이던 표현이다. 예를 들어 '고대일록(孤臺日錄)'에서 "박공간(朴公幹)이 헌납(獻納)으로 승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잣나무의 기쁨〔柏悅〕이 어떠하겠는가?"나 "사간(司諫) 문자선(文子善)이 형벌을 몇 차례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혜탄(蕙歎)의 지극함을 차마 못 견디겠다"고 쓴 것이 그 좋은 예다. 다산도 '우세화시집(又細和詩集)'에서 벗이 쫓겨났다가 다시 교리(校理)에 기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그것으로 백열의 기쁨을 표시한다는 시를 남겼다.
지금은 남이 잘되면 눈꼴시어 험담을 하고, 남이 못되면 그것 봐라 하고 고소해한다. 우리는 사람을 너무 아낄 줄 모른다. 남의 경사에 순수하게 기뻐 얼굴이 환해지고 남의 불행에 내가 안타까워 슬픔을 나누던 그 도탑고 아름답던 송무백열의 심성은 다 어디로 갔나?//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