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과위교(步過危橋)
인생길 걷기가 참 어렵다. 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예기치 않게 발목을 잡아채는 돌발변수에 대한 생각이 참 많았다. 잘 달리던 선수가 다른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채여 함께 넘어지는가 하면, 멋지게 잘하고도 석연찮은 판정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슬쩍 속임수로 승리를 따내기도 하고 운 좋은 어부지리의 금메달도 있었다. 불운은 우리에게만 오는 것 같이 보였다.
짧은 한순간을 위해 몇년간 흘린 피땀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물거품이 됐을 때 원망과 한숨이 어찌 없겠는가? 또다시 그 긴 고통의 시간 앞에 설 생각에 그때 가서 다시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까지 더해지면 원망은 공포를 수반한다. 판정을 번복할 수 없다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마음공부의 문제다.
예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펴낸 안정복 수택본(手澤本) 해제집을 살펴보니 '과위교(過危橋)'란 제목의 책이 있다. 송대 철학자 장재(張載)와 주돈이(周敦頤) 등의 저술을 초록한 내용으로 표제가 흥미를 끈다. 위태로운 다리를 지난다니 무슨 뜻으로 책에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실린 글의 취지로 보아 마음 다스리기의 어려움이 출렁대는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는 것보다 더 위태롭다는 뜻으로 보인다.
윤현(尹鉉·1514~1578)의 시에 '보과위교(步過危橋)', 즉 '걸어 위태로운 다리를 지나며'란 작품이 있다. '백 보 길이 위태론 다리 높이가 백척인데, 기운 판이 흔들흔들 굽어보니 아찔하다. 말을 타고 건너려도 어찌해 볼 길 없어 부축하게 하려 하나 오히려 할 수 없네. 어지런 눈 어찔타가 눈앞이 캄캄하고, 온몸이 덜덜 떨려 후회가 밀려온다. 지나고야 비로소 살아 있음 깨달으니, 출렁대는 인간 세상 이것과 다름없네.(百步危橋高百尺, 搖搖欹板俯難憑. 將乘馬度旣無奈, 欲倩人扶猶不能. 亂眼昏花方黯黯, 遍肌寒粟悔淩淩. 過來始覺吾身在, 灔澦人間果有徵.)'느닷없는 위기 앞에 오금이 떨리고 공포가 밀려온다. 나아갈 수도 돌아가지도 못한다. 그래도 결국은 그 다리를 건너야 다음 목표를 향해 갈 수가 있다. 다친 마음들 보듬어 굳은 땅을 딛고 용기백배 일어서서 가야겠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