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됐다. 졸업생이 떠나 허전하던 교정이 신입생의 풋풋한 생기로 가득하다.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빛들이 초롱초롱하다. 작은 꿈을 키워 큰 소망을 일구려면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내딛는 꾸준한 노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해방감에 들떠 우왕좌왕하다가는 자칫 다산(茶山) 선생이 '자소(自笑)'에서 노래한 것처럼 "답답하고 고달프게 스무 해를 지내다가, 꿈속에서 조금 얻고 깨고 보니 간 데 없네(圄圄纍纍二十秋, 夢中微獲覺來收)"의 형국이 되기 쉽다. 공부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겨우 시작인 것이다.
주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높은 곳에 이르려 한다. 하지만 낮은 데로부터 시작할 줄은 모른다(人多要至高處, 不知自底處)."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는 싶어 하면서, 막상 가장 낮은 데서부터 차근차근 밟아서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용'에서는 "먼 길을 가는 것은 가까운 데로부터 비롯되고,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낮은 데로부터 출발한다(行遠自邇, 登高自卑)"고 했다. 2009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예술의전당 기념전에서 안 의사가 친필로 쓴 이 구절을 본 기억이 새롭다.
박영(朴英·1471~1540)은 '대학(大學)'의 뜻을 풀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얕은 데로 말미암아 깊은 데에 이르고, 성근 데서 출발해 촘촘하게 된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것에 도달하고, 거친 데서 나아가 정밀함에 다다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 등급 더 올라간다(由淺而至深, 由疏而至密, 由小而至大, 由粗而至精, 進一步則升一級)." 작은 성취에 만족해 몸을 함부로 굴리면 뜻만 거칠어져 거둘 보람이 없다.
다산의 시 한 수 더. 제목은 '우래(憂來)'다. "태양 빠르기 새가 나는 듯, 탄환도 따라갈 수가 없다네. 붙들어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생각하자니 내 속만 구슬프구나(太陽疾飛, 銃丸不能追. 無緣得攀駐, 念此腸內悲)."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보석 같은 시간은 손에 쥔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간다. 도취의 꿈에서 깨어 정상을 향해 가는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 부족함의 자각에서 공부가 시작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