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방아깨비 한 마리 마당에 앉았다가
풀잎같이 흔들리던
긴 발목을 접는다
가을은, 어쩌면
가을은 제 몸 하나 거두는 것
눈 감아야만
하늘을 우러를 수 있다면
끝끝내 실눈마저 하얗게 덮으시던
가을은, 어쩌면 가을은 아버지의 마음 같은 거 /이서원
어느새 '방아깨비'도 '긴 발목을 접는' 때가 되었나 보다. 정강이 맑게 비치는 방아깨비 유의 곤충들은 아무래도 풀의 권속 같다. 그렇다면 가을 풀처럼 말라가며 함께 생(生)을 접을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발목 접는 곤충들 옆으로 가을 냄새도 짙어간다. 가을! 하고 들판을 걸으면 논배미마다 다르게 그려내는 무늬와 색깔들로 황홀하기 짝이 없다. 연두 머금은 노란빛의 선명한 벼 물결 앞에 목이 멜 정도다.
그런 금빛 물결 속에는 아버지의 시간이 있다. 어머니의 시간도 물론 들어 있지만 논에는 어쩐지 아버지의 굽은 등이 깊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기계화 이전에는 삽으로 진흙의 시간을 넘어온 아버지들. 가을빛 고슬고슬 익어가는 날, 들판에서 깊은 주름들을 다시 본다. '아버지의 마음 같은' 멋진 가을을 지어내신 분들께도 새삼 고개 숙인다. 올가을도 무엇을 거둘지 곰곰 돌아보며.//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