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미공(陳眉公)이 엮은'독서경(讀書鏡)'의 한 단락이다.송나라 때 조변(趙抃)이 물러나 한가로이 지낼 때 한 선비가 책과 폐백을 들고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다. 그는 말없이 읽던 책을 끝까지 다 마치고 나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조정에 학교가 있고 과거 시험도 있거늘 어찌 거기서 학업을 마치지 않고 한가로이 물러나 지내는 사람에게 조정의 이해에 대해 말하라 하는가?" 선비가 황망하게 물러났다.
당나라 때 산인(山人) 범지선(范知璿)이 승상 송경(宋璟)에게 자기가 지은 글을 바쳤다. 글로 그의 마음을 얻어 한자리 얻어 볼 속셈이었다. 송경이 말했다. "당신의 '양재론(良宰論)'을 보니 아첨의 뜻이 있소. 문장에 자신이 있거든 따로 보여주지 말고 과거에 응시하시오." 범지선이 진땀을 흘리며 물러났다.
이 두 예화를 소개한 후 그는 옛사람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관직에 있는 사람은 기색이 다른 사람과는 만나지 않아야 한다. 무당이나 여승은 말할 것도 없다. 마땅히 멀리하고 딱 끊어야 한다. 공예에 뛰어난 사람도 집에 오래 머물게 하면 안 된다. 이들과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다 보면 바깥에서 들은 얘기를 멋대로 바꿔 전해 시비를 농단한다."
실제로 송나라 때 방관(房琯)은 큰 학자로 재상의 반열에 올랐는데, 거문고 악사인 황정란(黃庭蘭)을 문하에 가까이 두고 출입하게 했다가 그의 말에 혹해 일을 그르치는 바람에 명성에 큰 누가 되었다. 가까이 두고 큰일을 하려면 멀리해야 할 것을 따져 가늠하고(審察疎遠), 일을 살펴 비방을 멀리하여(省事遠謗) 몸가짐을 무겁게 하고 자리와 사람을 잘 가려야 한다.
선초의 왕자 사부 민백형(閔伯亨)이 분매를 길렀다.그가 외직으로 나가게 되자 왕자가 임금께 바치고 싶다며 그에게 기르던 분매를 달라고 했다. 민백형이 바로 거절했다. 왕자가 이유를 묻자, 바깥 사람들이 왕자께서 바친 것인 줄 모르고 자신이 임금의 총애를 얻으려 아첨하는 것이라 비웃을 테니 드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일을 살펴 비방을 멀리하는 성사원방의 이치를 잘 알았다고 할 만하다. '효빈잡기(效顰雜記)'에 나온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