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朱子)의 '반일정좌(半日靜坐)반일독서(半日讀書)'란 말을 사랑한다. 하루의 절반은 고요히 앉아 내면을 기르고 나머지 반은 책을 읽는 데 쓴다. 그에게도 이것은 꿈이었을 것이다.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리고 회의는 끝도 없다. 한 사람을 겨우 보내자 다른 사람이 찾아온다. 이런 나날 속에 내면은 황량하고 피폐해져서 꿈조차 어지럽다.
명나라 탕빈윤(湯賓尹)의 '독서보(讀書譜)'를 읽다가 원황(袁黃
·1533~1606)이 쓴 '정좌공부(靜坐工夫)'란 항목에 절로 눈길이 가서 멎는다.
"정좌(靜坐)를 하려면 먼저 식심(息心), 즉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연습해서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고 버리기 힘든 것을 버린다. 한 가지를 참아내니 딱 그만큼의 수용(受用)이 생겨나고, 한 가지를 덜어내자 그것만큼 편하고 즐거워진다. 오래 익혀서 정좌공부가 점차 익숙해지면 저절로 접촉하는 곳마다 유익함이 있다. 하루 중에 틈이 나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한두 시간 정좌한다. 이를 두고 기식(氣息)을 조화롭게 해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말한다."
정좌라 해서 그저 맹탕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으면 마음이 깨어난다. 잠잠하던 생각이 성성하게 살아난다. 적막 속에 각성이 찾아든다. 둘 사이의 긴장이 팽팽하다. 정좌는 사람을 자칫 몽롱하고 멍한 상태로 빠지게 만든다. 그때마다 점검이 필요하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각성[惺]이 고요[寂]와 함께하고 고요가 각성과 따로 놀지 않아야 한다. 각성 없는 고요를 완공(頑空)이라 하고 고요를 벗어난 각성은 광혜(狂慧)라 한다. 대응법을 말하자면 이렇다. 마음이 산란할 때는 고요함으로 다스리고, 몽롱하고 멍할 때는 각성으로 추스른다(惺不離寂, 寂不離惺. 離惺而寂, 是謂頑空, 離寂而惺, 是謂狂慧. 但論對治之法, 散亂時須以寂治之, 昏沉時須以惺治之)."
완공은 깨달음 없이 멍한 것을, 광혜는 분별을 잃어 독선에 빠진 상태를 가리킨다. 가만히 그저 앉아 있는 것이 정좌가 아니다. 훈련과 연습이 없으면 마음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원숭이나 미친 말처럼 날뛴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