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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투석(下井投石)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1766년 연행(燕行)을 다녀왔다.그는 연경에서 만난 엄성(嚴誠)·육비(陸飛)·반정균(潘庭筠) 등 세 사람의 절강 선비들과 필담으로 심교(心交)를 나누고, 의형제까지 맺고 돌아왔다. 홍대용은 귀국 후 그들과 나눈 필담과 서찰을 정리해서 책자로 만들어 가까운 사람들에게 돌려 보였다. 이 일은 당시 지식인 사회의 단연 뜨거운 화제였다. 박제가는 안면이 없던 홍대용을 직접 찾아가 실물 보기를 청했고, 이덕무는 그 글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반발과 비방도 만만치 않았다.김종후(金鍾厚·1721~1780)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홍대용이 비린내 나는 더러운 원수의 나라에 일없이 따라간 것만도 못마땅한데, 한족(漢族)으로 오랑캐의 과거에 응시하여 그들을 섬기려는 천한 자들과 사귀고 돌아온 것을 자랑하는 것은 큰 허물이 아닐 수 없다고 성토했다.

 

홍대용이 장문의 반박 편지를 쓰면서 이른바 '제일등인(第一等人)'논쟁이 불붙었다. 청나라가 들어선 지 이미 백년이 지났고, 강희제(康熙帝) 이후 천하는 급속도로 안정되었다. 한족으로 머리를 깎고 청의 과거에 나아가는 것을 어찌 덮어놓고 꾸짖을 수 있는가? 또 그 사람을 보지 않고 과거 응시 여부만 가지고 멋대로 재단해서 비난하는 것이 옳은가?

 

이어진 김종후의 반박은 더욱 격렬했다.김종후의 논설은 명분론을 등에 업고 상대를 일거에 함정에 쓸어 넣으려는 독수를 품고 있었다. 기년(紀年)을 말하다가 강희 운운한 것조차 오랑캐를 천자로 높이려 드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홍대용은 남을 죄안(罪案)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터무니 없는 모함이라며 단락별로 분석해 통박했다.

 

논쟁의 핵심에 자리 잡은 말은  '제일등인'이고,  배경에는  소중화(小中華) 주의에 입각한 춘추의리론이 깔려 있었다. 이는 대단히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이었다. 홍대용은 이를 우물에 사람을 내려놓고 돌을 던지는[下井投石] 행위라고 비판했다. 우물을 치러 사람이 들어갔는데 올려주기는커녕 명분을 앞세워 돌을 던진다. 피할 길이 없어 맞지만 비열하다. 이런 것이 제일등인의 처신인가? 쌍방은 끝내 서로 승복하지 않았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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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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