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때 김두남 등이 첩에게서 낳은 딸을 부정한 방법을 써서 궁인으로 들였다. 비판하는 상소가 올라와 문제가 되자 임금이 누가 그 따위 말을 하고 다니느냐고 펄펄 뛰며 화를 냈다. 정경세(鄭經世· 1563~1633)가 글을 올려 아뢰었다.
"이런 문제는 전하께서 목소리를 높일 가치조차 없는 일입니다. 궁중의 일은 외인이 알 수가 없습니다. 잘못 전해진 것이면 임금께서 온화하게 '그런 일이 없다' 하시면 그뿐이고,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즉시 바로잡겠다'고 대답하시면 될 일입니다. 이렇게 하시면 성상의 마음에 삿된 뜻이 없어 밝고 깨끗하고, 상하 사이에 마음이 통해 도유우불(都兪吁咈)하던 요순 적의 기상을 오늘 다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근일의 진노하심은 절도에 맞지 않아 천한 자에게 해서도 안 될 일인데, 임금이 대신과 응대하는 사이에 이런 목소리와 얼굴빛을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진노를 거두시고, 분명한 전교로 앞서 하신 말씀에 대한 후회와 사과의 뜻을 흔쾌히 보이신다면 모든 사람의 참담한 기운이 화락한 기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윗글에서 요순의 시절에 도유우불했다는 말은 '서경(書經)'에서 요임금과 순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토론할 때 찬성과 반대 의견을 거리낌 없이 펼치고, 허물 없이 받아들였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도(都)는 찬미의 뜻이고, 유(兪)는 동의하여 호응하는 표현이다. 우(吁)는 생각이 다를 때, 불(咈)은 반대의 뜻을 나타낼 때 쓴다. 같은 찬성과 반대라도 정도 차이가 있다. 임금의 말이 옳으면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솔직하게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 임금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후대에 이 말은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뜻이 맞아 정사(政事)를 토론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마침내 임금의 비답이 내렸다. "그 뜻을 잘 알았다. 임금을 사랑하는 경의 정성을 가상히 여긴다. 경의 뜻에 따르겠다." 이로부터 임금의 노여움이 풀렸다. 사람들이 경하하며 정경세가 올린 글을 전해 외웠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기가 참 어렵다.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기는 더 어렵다. 아름답지 않은가?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