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허엽(許曄)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그대의 편지에서 이른바 경솔하게 선배의 잘못을 논한다고 한 것은 분명 까닭이 있어 나온 말일 겝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 같은 병통이 있을까 염려하여 마땅히 행동을 고치려고 생각 중입니다. 다만 주자께서 비록 이를 경계하였지만 도학상의 착오나 잘못된 곳을 논변할 때는 터럭만큼도 그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선배라 하여 덮어 가려주지 않았습니다."
다산은 이 편지를 읽고 나서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 "퇴계 선생께서 이색과 정몽주, 김굉필과 조광조 등 여러 군자에 대해 모두 논한 것이 있다. 잘못된 점은 때로 감추지 않았다. 이는 진실로 지극히 공정하고 바른 마음에서 나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하여 덮어주거나 가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의 시대에는 말하는 사람이 공정하게 하면 듣는 사람도 공정하게 들었다. 근세에는 당습(黨習)이 고질이 되어, 사사로이 좋아하는 바를 높여, 주견이 없고 배움이 부족한 사람을 종사(宗師)로 떠받든다. 사사로이 미워하는 바를 배척해서, 덕 높은 훌륭한 학자도 곡사(曲士)라며 물리친다. 말하기나 듣기 모두 공정하기가 쉽지 않다."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 나온다. 또 '김매순에게 보낸 답장'에서는 "옛 주석이라 해서 다 옳지 않고, 후대 학자가 새롭게 논한 것이라 하여 다 그른 것도 아닙니다. 마땅히 허심공관(虛心公觀), 즉 마음을 비워 공정하게 살펴, 시비의 참됨을 따져야지, 세대의 선후를 살피고 연대만을 따져 따를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은 허심공관의 태도라야 마땅하다. 당파에 따라 편을 갈라 동당벌이(同黨伐異), 곧 한편이면 무리 짓고, 다르면 일제히 달려들어 공격하는 행태는 시비를 전도시키고 바른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 모든 것에 사심이 개재된다. 다산의 통탄처럼 학문의 세계뿐 아니라 정치판에서도 '허심탄회(虛心坦懷)'라는 네 글자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당해 봐라'와 '두고 보자'의 엇갈림이 있을 뿐, 시비의 소재나 논의의 공정성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