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峽行雜絶 (협행잡절)딱따구리
山翁夜推戶(산옹야추호) 산 늙은이 한밤중에 지게문 열고서 四望立一回(사망입일회) 사방을 둘러보더니 투덜거리네. 生憎啄木鳥(생증탁목조) "얄미워라, 저 놈의 딱따구리! 錯認縣人來(착인현인래) 누가 마실 온 줄 알았네 그려."
19세기 전기의 시인 대산(對山) 강진(姜溍·1807~1858)이 서울을 떠나 강원도 일대를 여행할 때 썼다. 산골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몇 편의 시로 묘사했는데 그중 하나다. 매우 짧은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간 풍경이다. 한밤중 노인이 방문을 열고 마당에 나와 사방을 휘 둘러보고서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그가 마당을 나온 이유는 딱따구리 때문이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를 듣고서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나 보다 착각하여 서둘러 나왔다. 그러나 인기척은커녕 사위(四圍)가 고요하다. 에이! 오늘도 저 딱따구리란 놈에게 속았다. 허탈하게도 늘 저 놈에게 속는 것은 사람이 그리운 때문이다. 밤하늘의 한없는 고요는 어디선가 나를 찾아올 사람을 기다리게 만든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