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여로
바람은 먼 산골짜기에서
나뭇가지를 흔들고
펀펀한 들판을 깨워 일렁거리게 하고
가난한 농부의 소맷자락을 흔든다
바람은 태초로부터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고
아득히 먼 원시의 조상 대대로
사랑의 소식 전해주고
갑작스레 이별의 아픔을 안겨준다
바람은 계절의 전초병으로
꽃 소식 실어 오고
염천에 흘린 땀방울을 씻어 주고
싸늘한 서릿발 몰고 와 낙엽 떨구고
살갗 에이는 칼날 들이 댄다
꽃눈을 틔우던 과일이
부는 바람에 영글어 가듯
이 목숨 또한 바람에 씻기어 나이테 짓고
바람에 부대껴 시들어 간다
나의 인생이란, 바람
시원도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지상에 내려와
무수히 꿈을 쌓고 허물다
애증에 울고 웃고 부대끼면서
목숨 줄 허허롭게 날리어 보낸다
바람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스스로 메아리를 일으키고 노닐다
드넓은 바다로 나가
길 잃은 항해자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도시의 뒷골목 빌딩 숲 사이를 지나
도시인의 찌든 가슴을 적셔 준다
바람은 때로는 노도 같은 열정 이기지 못해
풍비박산 광폭하게 날뛰다가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가의 고운 숨결로 평화를 노래한다
/임봉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