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환공(齊桓公)이 이웃 나라 노량(魯梁)에 눈독을 들였다. 관중(管仲)이 말했다. "우선 공께서 먼저 제견(綈絹) 즉 두꺼운 비단 옷으로 갈아입으신 뒤, 신하들도 모두 입게 하십시오. 백성들이 따라 입게 될 것입니다." 제견은 노량에서만 나는 특산물이었다. 관중은 노량의 장사꾼을 따로 불렀다. "제견 1천 필을 가져오게. 황금 3백근을 주지. 앞으로 우리 제나라에서 제견의 수요가 많이 늘어날 테니 그리 알게."
노량 사람들은 신이 났다. 온 나라가 농사를 포기한 채 제견만 생산했다. 1년이 지났다. 관중이 보고했다. "이제 되었습니다. 노량은 전하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다음은?" "제견을 벗고 얇은 비단을 입으소서. 노량과의 교역도 끊으십시오." 다시 10개월이 지나자 노량은 온통 난리가 났다. 제견을 생산하느라 농사일을 돌보지 않아 온 나라가 굶주리고 있었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제견은 쓸모없이 창고 가득 쌓였다. 제나라에서 10전밖에 안 가는 곡물이 그곳에서는 1천 전을 주고도 살 수가 없었다. 2년 만에 노량 땅의 6할이 제나라로 넘어왔다. 3년째 되던 해에는 노량의 임금이 직접 와서 항복했다. "관자(管子)"에 나온다.
정(鄭)나라 무후(武侯)가 호(胡)에 눈독을 들였다. 그는 먼저 자기 딸을 호왕에게 시집 보냈다. 어느 날 왕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과인이 다른 나라를 치려 하는데 어디를 먼저 치는 것이 좋을까?" 한 신하가 말했다. "호나라가 좋겠습니다." "내 딸이 그곳으로 시집갔는데, 사위를 치란 말인가?" 무후가 펄펄 뛰며 그 신하를 죽였다. 그 말을 들은 호왕은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정나라에 대한 대비를 일절 하지 않았다. 무후는 그 틈에 호나라로 쳐들어가 단번에 빼앗았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온다.
가장 환대하는 상대를 덮어놓고 믿었다간 한 입에 자기 나라를 가져다 바칠 일이 생긴다. 당장의 떼돈에 현혹되어 기본을 잃으면 비상시에 헤어날 방법이 없다. 펜타곤 내부를 다 보여준 환대에 감격할 것 없다. 의회의 동원된 기립박수에 고무될 것도 없다. 저들의 대접이 지극할수록 뭔가 큰일이 일어나겠구나 하고 대비를 서두르는 것이 맞다. 거품을 빼고 기본을 챙기는 것이 먼저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