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초의(草衣) 스님에게 준 친필 증언첩(贈言帖)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주역'에서는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곧을 수가 있으니 때가 되어 이를 편다(含章可貞, 以時發也)'고 했다. 내가 꽃을 기르는데, 매번 꽃봉오리가 처음 맺힌 것을 보면 머금고 온축하여 몹시 비밀스럽게 단단히 봉하고 있었다. 이를 일러 함장(含章)이라고 한다. 식견이 얕고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 겨우 몇 구절의 새로운 뜻을 알고 나면 문득 말로 펼치려 드니, 어찌 된 것인가?"
꽃봉오리가 처음 맺혀서 활짝 벙그러질 때까지는 온축의 시간이 필요하다. 야물게 봉해진 꽃봉오리를 한겹 한겹 벗겨보면 그 안에 활짝 핀 꽃잎의 모양이 온전히 깃들어 있다. 차근차근 힘을 모아 내면의 충실을 온전히 한 뒤에야 꽃은 비로소 제 몸을 연다. 꽃이 귀하고 아름다운 까닭이다.
주인은 씨앗을 뿌리거나 묘목을 심어 물을 주고 거름으로 북돋운다. 풀나무는 비바람을 견뎌내고, 뿌리와 줄기의 힘을 길러, 마침내 꽃 피워 열매 맺는다. 사람도 부모와 스승의 교육을 받고, 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역경과 시련을 통해 함양을 더하고, 마침내 내면이 가득 차서 말로 편다. 이런 말은 아름답고 향기롭다. 온축의 시간 없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기만 하면 그 말이 시끄럽고 입에서는 구린내가 난다.
다산은 강진 유배 18년간 문 닫고 학문에만 몰두했다.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사색을 거듭하는 동안 고요히 내면에 쌓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는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함장축언(含章蓄言), 즉 아름다움을 안으로 머금고, 말을 뱉지 않고 쌓아두어 괄낭(括囊), 곧 주머니의 주둥이를 묶듯이 온축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그간의 공부에서 얻은 깨달음을 글로 남기지 않는다면 성인(聖人)의 뜻을 저버리는 것으로 여겨져 마침내 책을 저술했다고 술회했다.
옛 사람의 말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부득이(不得已)의 결과였다. 지금 사람의 말은 뜻도 모른 채 행여 남에게 질세라 떠드는 소음의 언어다. 난무하는 정치가들의 빈말, 헛말을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야 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야무지게 오므린 꽃봉오리의 함축을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그들의 말에서는 도대체 진심을 느낄 수가 없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