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 연암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현장을 보러 밀운현(密雲縣) 구도하진(九渡河鎭)을 물어물어 찾은 적이 있다. 하룻밤에 아홉 번 황하를 건넜다길래 잔뜩 기대하고 갔더니 고작 폭이 20~30m 남짓한 구불구불 이어진 하천이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연암의 허풍에 깜빡 속았다. 하천을 끼고 난 도로로는 1도(渡)에서 9도까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길이 없었을 테니 굽은 물길을 따라 몇 차례쯤 물을 건넜겠는데, 아홉 번은 아무래도 풍이 심했다.
캄캄한 밤중에 강을 건널 때 물이 말의 배 위로 차오르다가 말의 발이 허공에 매달리기도 하니, 자칫 굴러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왜 없었겠는가? 간신히 강을 건너자 누가 말했다. "옛날에 위태로운 말에 '소경이 애꾸눈 말을 타고서, 한밤중에 깊은 못가에 섰네(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라고 했다던데, 오늘 밤 우리가 꼭 그 짝입니다그려." 연암이 대답한다. "위태롭긴 하네만, 위태로움에 대해 잘 안 것은 아니로군!" "어째 그렇습니까?" "눈이 있는 자가 소경을 지켜보며 위태롭다 여기는 것이지, 소경 자신은 보이질 않아 위태로울 것이 하나도 없네."
두려움과 위태로움은 눈과 귀가 만든다. 연암은 소경의 비유를 즐겨 말했다. 소경이 지나는 것을 보고는 "저야말로 평등안(平等眼)을 지녔구나!"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우리는 자주 멀쩡히 뜬 두 눈 때문에 외물에 정신이 팔려 공연한 걱정을 만들고, 쓸데없는 위태로움을 자초한다.
몇이 모여 위태로움에 관한 말 짓기 시합을 했다. 환남군(桓南郡)이 운을 뗐다. "창끝으로 쌀을 일어 칼 끝으로 불 땐다.(矛頭淅米劍頭炊)" 은중감(殷仲堪)이 맞받았다. "백살 먹은 노인이 마른 가지 오르네.(百歲老翁攀枯枝)" 고개지(顧愷之)가 거들었다. "우물 위 두레박에 갓난아이 누웠구나.(井上轆轤臥嬰兒)" 막상막하였다. 그때 곁에 있던 은중감의 부하가 불쑥 끼어들어 했다는 말이 위에 인용한 구절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 유의경이 지은 책에 나온다. 세상에 위태로운 것이 어디 이뿐이랴! 눈을 떠서 위태로움을 만들 것인가? 눈이 멀어 위험을 자초할 것인가? 이것도 저것도 참 어렵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