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가 지은 '이학사의 시에 차운하여 보내다(次韻李學士再和籠字韻詩見寄)'의 5·6구는 이렇다. "옛사람 묵은 자취 추구(芻狗)로 남아 있고, 지난날의 뜬 영화는 목옹(木翁)을 웃는다네(古人陳迹遺芻狗, 往日浮榮笑木翁)." 또 '하산하라는 데 대해 감사하는 글(謝下山狀)'에서도 "삼가 생각하건대 저는 절집의 쇠잔한 중이요 선대 조정의 묵은 물건으로, 형세는 제사 마친 추구와 같고 모습은 놀다 버린 목옹과 한가지입니다"라고 했다.
두 글에 모두 추구와 목옹이 대구로 등장한다.추구는 제사 때 쓰는 풀로 엮어 만든 개다. '장자' '천운(天運)'에서 "추구는 진설하기 전에는 상자에 담아 수놓은 비단으로 감싸두었다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재계할 때 모셔 간다. 진설을 마치고 나면 길 가던 자가 그 머리와 등을 밟고 땔감 줍는 자가 가져다가 불을 때기도 한다. 만약 되가져가 상자에 담아 수놓은 비단에 싸두고서 그 아래에서 생활하게 되면 악몽을 꾸거나 반드시 자주 가위눌리게 된다"고 한 바로 그 물건이다.
추구는 제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건이다. 소중하게 간직하다 제사만 끝나면 길에다 던져서 일부러 짓밟고 땔감으로 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추구에 붙은 귀신이 방자를 해서 산 사람을 괴롭힌다고 믿었다. 목옹은 나무로 깎은 인형이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며 애지중지하다가 싫증 나면 길에다 내던져 버린다.
서거정(徐居正)도 '춘일서회(春日書懷)'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공명이야 필경은 추구와 다름없고, 신세는 날아 솟는 종이 연에 부끄럽다(功名畢竟同蒭狗, 身世飛騰愧紙鳶)." 여기서는 추구에 지연(紙鳶), 즉 종이 연을 대구로 썼다. 종이 연이 허공 높이 솟아 활기차게 난다. 그러다가 연줄이 끊어지면 끝 모른 채 날려가서 자취를 알 수 없다. 이 또한 액막이용이다.
필요할 때는 너밖에 없다며 치켜세우다가 볼일을 다 보고 나면 길에다 내던져서 일부러 짓밟고 땔감으로 태워버린다. 혹시 가위에 눌리거나 동티가 날까 봐 더 못되게 굴어 결국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권력이 무섭다. 인간이 참 무섭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