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행(金謹行)은 오랜 세월 권력자를 곁에서 섬긴 관록 있는 역관이었다. 그가 늙어 병들어 눕자, 젊은 역관 하나가 죽을 때까지 받들어 지켜야 할 가르침을 청했다. 그가 말했다. "역관이란 재상이나 공경(公卿)을 곁에서 모실 수밖에 없네. 하지만 틀림없이 망하고 말 집안 근처에는 얼씬도 말아야 하네. 잘못되면 연루되어 큰 재앙을 입고 말지."
"필패지가(必敗之家)를 어찌 알아봅니까?" "내가 오래 살며 수많은 권력자의 흥망을 이 두 눈으로 지켜보았지. 몇 가지 예를 들겠네. 첫째,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말만 들기를 좋아하고, 손님을 청해 집 앞에 수레와 말이 법석대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네. 둘째, 무뢰배 건달이나 이득 챙기려는 무리를 모아다가 일의 향방을 따지고 이문이나 취하려는 자치고 오래가는 것을 못 보았지. 셋째,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점쟁이나 잡술가(雜術家)를 청해다가 공사 간에 길흉 묻기를 좋아하는 자도 틀림없이 망하고 마네. 넷째, 공연히 백성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을 예우한다는 명예를 얻고 싶어 거짓으로 말과 행실을 꾸며 유자(儒者)인 체하는 자도 안 되네. 다섯째, 이것저것 서로 엮어 아침의 말과 낮의 행동이 다른 자는 근처에도 가지 말게. 여섯째, 으슥한 길에서 서로 작당하여 사대부와 사귀기를 좋아하는 자도 안 되지. 일곱째, 언제나 윗자리에 앉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도 꼭 망하게 되어 있네. 윗사람을 모셔도 가려서 해야 하네. 그가 한번 실족하면 큰 재앙이 뒤따르지. 특히 기억하게나. 다른 사람이 자네를 누구의 사람이라고 손꼽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네." '송천필담(松泉筆談)'에 나온다.
성대중(成大中)이 말했다 . "기미(幾微)로 이치를 밝히고, 현명함으로 의심을 꺾는다. 깊이로 변화에 대처하고, 굳셈으로 무리를 제압한다. 이 네 가지를 갖춘다면 바야흐로 적과 대적할 수가 있다(幾以燭理, 明以折疑, 深以處變, 毅以制衆. 四者備, 方可以應敵)." 리더라면 이쯤은 되어야 한다. 뻔한 것을 못 보고, 툭하면 의심하며, 경솔하게 바꾸고, 무리에게 휘둘리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바야흐로 정가에도 짝짓기 철이 다가온 모양이다. 줄을 잘 서는 것이 관건이겠는데, 명심하게나! 사람들이 자네가 누구의 사람이라고 말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