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긋는다
‘반듯하게 긋는구나’
이제는 칭찬할 사람도 없는데
돋보기를 끄고서 금을 긋는다
다시는 돌아설 수도 없고
뒤집을 수도 없게
못을 박은 시늉이다
진종일 쫓아다니던 그림자도 잦아들고
피어오르던 안개도 차분한 저녁
나만 외롭게 두드러져서
확실한 대답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럭저럭 참을걸
발 딛을 언덕 하난 남아 있지 않은데
눈을 감고 부엉이처럼 얼버무릴 걸
죽고 사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삐뚤삐뚤 기를 쓰고
금을 긋는다
/이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