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를 왕래하는 저 사람들은, 농어맛 좋은 것만 사랑하누나. 그대여 일엽편주 가만히 보게, 정작은 풍파 속을 출몰한다네." 송나라 때 범중엄(范仲淹)이 쓴 '강가의 어부(江上漁者)'란 작품이다. 현실에 역경이 있듯 강호에는 풍파가 있다. 강가엔 농어회의 향기로운 맛과 푸근한 인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는 거기대로 찬 현실이 기다린다. 녹록지가 않다. 힘들고 어려워도 정면돌파 해야지, 자꾸 딴 데를 기웃거려선 못쓴다. 실컷 먹고 배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과 가난해도 즐거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은 기실 강호가 아닌 내 마음속에 있다.
육시옹(陸時雍)은 이 시를 이렇게 평했다. "정을 잘 말하는 자는 삼키고 토해냄을 잘 조절해 드러낼 듯 외려 감춘다." 욕로환장(欲露還藏), 보여줄 듯, 도로 감춘다는 표현에 묘미가 있다. 원래 범중엄은 입만 열면 귀거래(歸去來)를 되뇌며 현실을 나무라고 탓하는 자들에게 할 말이 아주 많았던 듯하다. 제 한 몸 깨끗이 한다며 현실을 모두 등진다면 세상은 어찌 되겠는가? 하지만 시인은 그 끝만 슬쩍 드러내 보여주었을 뿐 내놓고 비난하진 않았다.
욕로환장! 시뿐 아니라 세상 일이 다 그렇다. 미녀의 늘씬한 몸매도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 감출 때 매력이 있지, 활씬 다 벗어부치면 추하고 역겹다. 저만치 혼자서 핀 꽃은 조금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옳다. 윤선도가 '어부사시사'에서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에 더욱 좋다'고 노래했던 이유다. '먼빛에'와 '저만치'의 거리가 필요하다. 가지 않고 남겨둔 여백이 있어야 한다.
송나라 때 소강절(邵康節)은 이렇게 노래했다. "좋은 술 마시고 살포시 취한 뒤에, 예쁜 꽃 절반쯤 피었을 때 보노라(美酒飮敎微醉後, 好花看到半開時)." 거나하게 취해 활짝 핀 꽃을 꺾는 것이 잠깐은 통쾌하겠지만, 아침에 깨고 보면 영 후회스럽다. 다 털어 끝장을 봐서 후련한 법이 없다. 갈 데까지 가면 공연히 볼썽사나운 꼴만 보게 된다. 말 한 마디에 울컥해서 오랜 친구를 죽이고, 한때의 분을 못 이겨 할머니와 소녀가 지하철에서 맞짱을 뜨는 세상이다. 말에 독이 들고, 혀가 칼이 된다. 간직해 남겨둔 여백을 잊고 산지가 오래되었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