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화살을 맞았다. 화살이 꽂힌 채 외과의사에게 갔다. 의사는 톱을 가져와 드러난 화살대를 자른다. "자, 됐소!" "살촉은요?" "음. 거기서부터는 내과 소관이오." 이른바 '거전(鋸箭)', 즉 화살 톱질하기다. 절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가마솥에 작은 구멍이 났다. 땜장이는 녹을 벗긴다며 망치로 살살 두드려 작은 구멍을 더 크게 만든다. "이것 봐요! 하마터면 새 솥을 사야 할 뻔했어요." 구멍을 잔뜩 키워 놓고서야 땜질을 해준다. 주인은 연방 고맙다며 비싼 값을 치른다. '보과(補鍋)', 즉 솥 땜질의 요령이다. 문제를 키워라. 그러고 나서 해결해주어야 고맙단 말을 듣고 돈도 많이 받는다.
리쭝우가 '후흑학(厚黑學)'에서 제시한 '판사이묘(辦事二妙)', 즉 일을 처리하는 두 가지 묘법이다. 시늉만 하고 책임질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문제는 키워서 해결해준다. 이렇게만 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도 유능하단 말을 듣고, 시늉만 해도 역량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갈비뼈 아래가 여러 날 찌르듯 아파 병원에 갔다. 일반 외과로 가라기에 가서 초음파를 찍었다. 담낭에 담석이 있고, 부숴 봐야 100% 재발하니 담낭을 떼라고 판정한다. 제 몸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싶어, 내과 진료를 신청했다. 담낭을 떼라더란 말을 했더니 펄쩍 뛴다. 담석도 없고 깨끗하다. 주변에 희끗한 것은 담석이 아니라 지방간인데 심한 것도 아니다. 담낭을 왜 떼나. 그걸 떼면 제거 후 증후군도 있고 소화에 큰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지금 통증의 원인이 담낭 때문인지도 분명치 않다. 조금 더 지켜보자.
며칠 뒤 등에 부스럼이 돋았다. 결국 피부과에서 대상포진의 진단을 받았다. 외과는 왜 갔어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왜 이제 왔어요? 죄인 심문하듯 하는 의사의 짜증 섞인 말투에 속이 상한다. 가라니까 갔고, 비싼 돈 들여 검사해서 멀쩡한 담낭을 뗄 뻔한 것도 고약한데, 누군 늦게 오고 싶어서 왔느냔 말이다.
과로가 신경계의 난조를 빚어 통증과 발진을 불렀다. 외과의사는 담낭 쪽이 아프니 일단 제거하자고 했다. 담낭이 없어도 괜찮은가?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 거전의 수법이다. 소화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내과 의사가 고치면 된다. 보과의 방법이다. 병원은 이래저래 이익을 남겨 좋고, 환자는 병이 나아서(?) 고맙다. 그러나 그런가?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