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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성(大器晩成)

유만주(兪晩柱·1755~1788)의 글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기만성이란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못난 선비들을 함정에 빠뜨려 죽였던고(大器晩成一語, 陷殺多少庸儒)." 이 말에 무릎을 치다 말고 씁쓸히 웃었다. 재능이 없고 노력도 않으면서 평생 입신출세의 허망한 꿈에 매달리는 인생들을 조소한 말이다. 하면 된다는 말이 사람 잡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해도 안 될 일에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일은 어찌 보면 무책임하다. 그렇다고 너는 가망이 없으니 처음부터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소년이 묻는다.  "선생님 글을 쓸 때 자신의 견해를  어떻게 세워야 하나요?" 선생은 안경 너머로 소년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음, 어려운 문제다. 내가 얘길 하나 들려줄까? 어떤 집에서 아들을 얻어 몹시 기뻤지. 한 달이 지나 덕담을 들으려고 손님을 청했단다. 한 사람이 말했어. '이 녀석 크면 큰 부자가 되겠는데요.' 부모는 기뻤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 '관상을 보니 높은 벼슬을 하게 생겼어요.' 더 흐뭇했지.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 아이는 나중에 틀림없이 죽겠군요.' 그는 술 한잔 못 얻어먹고 죽도록 매를 맞고 쫓겨났단다.

 

누구나 죽기 마련이니 그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  하지만 아무나 부자가 되고 벼슬을 하는 것은 아니니 그건 거짓말일 수도 있다. 거짓말한 사람은 보답을 받고, 사실대로 말한 사람은 죽도록 얻어맞은 셈이지." 소년이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거짓말도 하기 싫고 맞기도 싫어요.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지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와! 이 녀석은 정말! 허참! 이걸 좀 보세요! 어쩌면, 이야! 아이쿠! 햐! 허허!" 루쉰(魯迅)의 수필에 나오는 얘기다.

 

험한 세상에서  자기의 견해를  세우는 일은   거짓말하기 아니면 두드려 맞기다. 없는 말 하면 칭찬받고,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다. 입바른 말을 하면 노여움을 사서 내팽개쳐진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는 더구나 걷잡을 수가 없다. 아첨을 잘하면 누가 뭐래도 승승장구한다. 올곧은 말은 내침을 받는다. 입이 근질근질해도 끝까지 다 말하면 안 된다. 제 패를 함부로 내보이면 안 된다. 성공의 그날까지 꾹 누르고 억지로 참는다. 끝내 오지 않을 빛 볼 날을 기다리는 대기만성은 그래서 슬프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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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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