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지식인들의 우정론은 자못 호들갑스럽다. 연암 박지원은 벗을 한집에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라고 했다. 제이오(第二吾), 즉 제2의 나라고도 했다.
마테오 리치 (1552~1610)는 예수회 신부로 1583년에 중국에 와서 1610년 북경에서 세상을 떴다. 놀라운 기억술을 발휘해서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심지어 거꾸로 외우기까지 해서 중국인들을 경악시켰다. 그가 명나라 건안왕(建安王)의 요청에 따라 유럽 신사들의 우도(友道), 즉 'Friendship'에 대해 쓴 '교우론'이란 책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몇 구절만 소개하면 이렇다. "내 벗은 남이 아니라 나의 반쪽이다. 제2의 나인 것이다." "벗은 가난한 자의 재물이요, 약한 자의 힘이며, 병자의 약이다." "원수의 음식은 벗의 몽둥이만 못하다." 일화도 소개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나라 창고가 없었다. 정복으로 얻은 재물을 모두에게 나눠 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그대의 창고는 어디 있는가?" 알렉산더가 대답했다. "벗의 마음 속에 있네." 이런 짧은 글에서 중국 지식인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이전까지 오륜 중에 붕우유신(朋友有信)은 다섯 번째 자리에 놓여있었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을 읽은 뒤로 우정에 대한 예찬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덕무가 지기(知己)에 대해 쓴 글은 이렇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아내를 시켜 백 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으로 축을 달아 아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사이에 펼쳐놓고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살다가 막막해져서 부모도 아니고 처자도 말고 단 한 사람 날 알아줄 지기가 필요한 날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 한 사람의 벗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다시 건너갈 힘을 추스를 수 있다. 나 아닌 나, 제2의 나가 없는 인생은 차고 시린 밤중이다. 올해는 마테오 리치가 세상을 뜬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