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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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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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기 전에
자기 앞을 가릴 필요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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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고
예수의 전언에 맞추어
살아갈 필요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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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말은
하나의 봉인과도 같아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피해 가지 않을 때
인생에서 가렸던 진실들이 눈앞에 나타난답니다.
.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성찰하는 것은
어두운 굴 끝에 보이는 빛이
희망의 실재임을 확인하는 여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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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인간의 여정은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예수님은 이 시각을 뒤집으셔서 우리의 여정이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중략) 그러니까 죽음은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살아 계신 하느님, 계약의 하느님, 내 이름과 우리의 이름을 지닌 하느님이 계십니다.”(『우리 곁의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에서).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