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84.140921 이웃의 아픔을 헤아리자 . . .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 . . “수많은 인류의 마음을 지배해 온 갖가지 망상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기묘한, 어쩌면 가장 명예롭지 못한 망상은, 사회적 행동의 규범은 사회적 애정의 작용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결정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른바 경제학이라는 근대의 학문일 것이다.” <러스킨『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 러스킨은 ‘세상의 셈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셈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사회는 점점 더 비인간화로 치달으면서 인간성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예언자적 직관으로 내다보았답니다. . . . 예수님의 셈법은 사람을 소모품이자 이윤을 내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제학’을 거부한답니다. . 예수님의 비유는 예수님 시대나 러스킨 시대보다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할 말씀이랍니다. . 지금 이 시대만큼 ‘세상의 셈법’에 젖어 있던 적도 드물기 때문이랍니다. .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의 잘못된 통념에서 우리의 생각을 되돌리는 ‘회심’의 여정이랍니다. . . . 복음은 일자리를 잃거나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가운데 인격적 존엄을 침해받는 이웃의 처지를 대할 때, 경제 논리가 아니라
연민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을 촉구하고 있답니다.
' . . .
이웃의 아픔을
헤아려야 한답니다. . . . 나는? 외통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