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寓居(산중우거)산중에 잠시 머물며
高顚不敢上(고전불감상) 산꼭대기는 차마 오르지 않는데
不是憚躋攀(불시탄제반) 오르기 힘들어서는 결코 아니다.
恐將山中眼(공장산중안) 산에 사는 사람의 눈을 가지고서는
乍復望人寰(사부망인환) 인간 세상 바라보기가 두려워서다.
欲試山人心(욕시산인심) 산 사람의 마음을 떠보려고
入門先醉奰(입문선취비) 문에 들어가 술주정부터 부려봤으나
了不見喜慍(요불현희온) 반가움도 불평도 끝내 안 보이니
始覺眞高士(시각진고사) 진정한 고사임을 알아차렸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李奎報·1168 ~1241)는 젊은 시절 개성 천마산 아래에 살았다.
자주 산에 올랐고 그때 느낀 단상(斷想)을 짤막한 시 여러 편으로 표현하였다.
단상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깊이 있는 생각이 담겨 있다.
정상은 일부러 등반하지 않는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정상에 올라가 저 아래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
다시는 그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만 같다.
자칫 세상을 버리고 영영 산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산에는 사람이 살고 있어 괜찮은 분인가 시험하고픈 장난기가 동했다.
일부러 미친 척 불쑥 들어가 다짜고짜 술주정을 해댔다.
하지만 끝내 화도 안 내고 반가워도 안 한다.
세상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래저래 산으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