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27.140725 주님의 잔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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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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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사도적 실존’을 요약한
‘질그릇에 담긴 보물’ 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2코린4,7-15)아름다운 표현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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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서 떠오르는
심상을 잘 간직하여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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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며,
험한 인생길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충실하고 행복하게 걸어가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 질그릇 속의 보물은
‘약함 안의 강함’이자 ‘고난 속의 영광’이며,
‘죽음 안의 부활’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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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역설적 실존’을
온몸으로 살아가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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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존재 전체는
충격을 받아 깨어지는
무력한 질그릇과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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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서질 수밖에 없는 유약함을
주님께서 모르시어
그 안에 당신의 복음을 담아 주신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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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오히려
우리가 인간적 강함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더없는 약함마저도 치유하는 엄청난 힘이
당신에게서 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기를 원하셨답니다.
. 사도들이 그러하였듯,
고난과 환난과 박해를
온몸으로 받아 안는 삶을 통해서만
복음 선포는 빛을 발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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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새기듯
끊임없이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사람에게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선사하신
생명 가득한 삶이 드러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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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과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질그릇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현존이라는 보물을 증언하는 도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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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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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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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잔을 받아 마실 때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보물 같은 주님의 현존을 선사하실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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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리스도인 삶의
목적이고 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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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의 잔을 마셔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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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