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26.140724 경외 감사와 겸손을 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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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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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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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기를 원하셨고,
그 신비는 비유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기에
군중에게 비유로만 말씀하셨답니다.
(마태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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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에서,
왜 군중에게 비유로만 말씀하시는지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주신 답은 역설적으로 들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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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고
한 이사야의 예언(이사 6,9-10) 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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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비유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시려고’
감추시는 말씀이라고 해야 할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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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나라의
신비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쟁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데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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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가
드러나는 것을 보고 들으려면
겨우내 매화꽃이 피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 꽃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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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조작해 낼 수도, 이용할 수도,
내키는 대로 재단하여 처분할 수도 없는
살아 있는 실재입니다.
. 예수님의 비유를 들으며
하느님 나라를 알아들으려면
이해력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주님에 대한
경외와 감사와 겸손을 담고 있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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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할 때 비유의 말씀은
“성경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경구처럼
하느님 나라의 장관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줄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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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대한
경외 감사와 겸손을 담아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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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