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내려와 초당에서 묵다 율곡(栗谷) 선생이 스무 살 때 삶에 회의를 느껴 머리를 깎고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산을 내려왔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풍암(豐巖) 이광문(李廣文) 초당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 그는 자문자답한다. 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가? 도(道)를 배우는 것은 집착이 없는 것, 한곳에 머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져 있지도 않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인연이 있다는 것뿐이다. 오늘 잠시 동해안 바닷가 이 초당에 묵고 있다. 매인 데 없는 구름처럼 내일이면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매화나무 가지에 비친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년의 방황과 패기가 행간에 스며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與山人普應下山, 至豐巖李廣文家, 宿草堂
學道卽無著 (학도즉무착) 도를 배운다는 것은 집착이 없다는 것
隨緣到處遊 (수연도처유) 인연이 되는 대로 여기저기 노닐련다.
暫辭靑鶴洞 (잠사청학동) 푸른 학이 사는 골짜기를 선뜻 떠나
來玩白鷗洲 (내완백구주) 흰 갈매기 나는 물가에 와 구경한다.
身世雲千里 (신세운천리) 천리를 떠도는 구름 같은 신세로
乾坤海一頭 (건곤해일두) 바다 한 귀퉁이 하늘과 땅에 서 있다.
草堂聊寄宿 (초당요기숙) 당에 몸을 맡겨 묵고자 하니
梅月是風流 (매월시풍류) 매화에 비친 달, 이것이 풍류로구나
/이이(李珥·1536~1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