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가 필 때다. 굵은 줄기에 뻣센 가시까지 야생성이 도드라지는 꽃, 엉겅퀴. 잘 꺾이지 않아서인지 접근을 허락지 않는 고독한 인상도 강하다. 어린 순은 '가시나물'로 먹었는데, 여느 야생화랑 많이 달라 여름이면 손대기조차 두려웠었다. 보라색 꽃이 참 매혹적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개성 때문일까, 시인은 엉겅퀴를 '반골(反骨)의 뼈'로 되세운다. 그것도 '빗물만 마시며 키운/ 깡마른' 뼈로! 하고 보면 야생화나 풀들이 또 무얼 먹겠는가. 겨우 빗물이나 받아 마실 뿐이다. 그런데도 '쉽사리' 아무 데나 '무릎 꿇지 않는'단다. 그러니 '식민지 풀죽은 토양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 역시나 '혼자 죽창을 깎고 있다'. 맵찬 전언에 쿡 찔린다. 참으로 강골 같은 대찬 엉겅퀴다. 요즘은 뛰어난 약효 덕에 뽑혀 다니는 신세가 됐지만, 혼자서도 '식민지'를 깨우는 그 '죽창'은 결코 내려놓지 않으리라. 아, 죽창 같은 엉겅퀴의 푸른 가시나 만지러 갈까 보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