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83.140302 삶의 가치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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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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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세상 삶의 가치를 무시한 채
현세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영혼만을 돌보라는
잘못된 영성이나 이원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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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종교적 가르침과 세상살이 사이의
채워질 수 없는 간격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불가능한 이상도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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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초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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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 있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깊은 염려와 사랑의 말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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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삶의 변화는
올바른
삶의 우선순위를 가졌을 때
가능하다고 선언하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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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얼마나 정곡을 찌르며
'현실적'인지를 헤아릴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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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분부는 우리 모두에게,
곧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오만한 부자에게도,
실의와 분노로 가득 찬 궁핍한 이들에게도
절실한 말씀이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시려는,
말 그대로의 '기쁜 소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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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실천하는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며,
복음에 분명하게 밝혀져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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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상살이에 대한 심려 이전에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삶의 가치인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정의를 추구하는 데 힘을 쏟는다면
지상의 것들을 온전하게 선용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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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기술'이며,
세상살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태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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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인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정의를 추구하는 데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야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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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