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느라 벌써 나른한데, 폭설 피해 복구로 분주한 곳도 있다. 풍경이 다 그렇듯 설국(雪國)도 바라보는 이에겐 눈부신 그림이지만, 사는 이에겐 헤쳐가야 할 현실이다. 폭설 속에서는 나다니는 것부터가 고행이고, 사람도 짐승도 두절(杜絶)을 뚫기가 너무 힘드니 말이다.
큰 눈 쌓인 어느 겨울 강원도를 돌아본 적이 있다. 밤기차에서 내다보는 산간마을이 소설 속 머나먼 나라인 양 서로 아득했다. 희다 못해 시푸르던 눈밭에는 짐승들의 작은 발자국만 간간이 떨고 있었다. 그중에 사슴 발자국도 있었던가. 더러는 앙증맞은 발자국들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눈에 홀려 / 바람에 홀려'갔는지, '시나 만지며' 갔는지….
그런데 '싹수가 노오란 시'라니! 시인이란 참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하다가, 어떤 시가 그러한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런 발자국을 좇다 보면 야금야금 아껴 먹는 봄방학 꼬랑지가 조금 더 맛있겠지? 아직 남아 있는 겨울 발자국을 지우며 가는 이월도 끝자락, 아슴아슴 또 그립겠지. /정수자 :시조시인 /그림 : 김성규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