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무거워 보인다.
잎새 하나마다 태양이 엉덩이를 깔고 누웠는지
잎새 하나마다 한 채 눈부신 궁궐이다.
그 궁궐 호수도 몇 개 거느리고 번쩍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
위로 위로 쏘는 화살처럼 휘 번뜩 거리는데
이런 세상에 이 출렁이는 검푸른 녹음의 새빨간 생명들이
왁자지껄 껴안으며 춤추며 뭉개며 서로서로 하나로 겹쳐지는데
무지 실하다
공(空)으로 가기 위해 힘을 불리고 있는 중인가. /신달자
한창 꽃철, 산골에서 하룻밤 묵는 날인데 마침 비바람이 친다.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그 유명한 '밤 비바람 소리, 꽃 다 지겠네(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라는 구절 그대로다. 시가 있어 그나마 꽃이 다 지는 아쉬움은 덜하다. 그 옛날의 인간 성정(性情)이 지금 우리 마음 그대로임을, 그래서 천년을 사이에 두고도 교감하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꽃이 지자 꽃자리에 녹음이 밀린다. 연록색 새 잎사귀들이 일제히 튀어나오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안이, 놀라워라. 궁궐이다.(잎맥 속의 그 서까래를 보아라!) 궁궐은 다시 나뭇가지 전체의 호수가 되고 호수 위로 낱낱의 이파리는 튀는 물고기다. 탱탱한 생명의 상승 상승, 위로만 쏜 화살처럼 도약의 기운으로 넘쳐난다. 녹음 밀리는 지금 여기 나뭇잎 하나 속에서 발견하는 우주(空)의 파노라마가 가히 숨 가쁘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