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나 마루 밑에서 발견하게 되는 삭아가는, 정작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낡은 군화를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그것은 한 뒤처진 인생이 남긴 자서전과 닮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현관에 뒹구는 내 신발의 뒤축이 비스듬히 닳아 있는 것을 보았다. 감추고 싶은 상처를 들킨 듯 허전하고 민망하고 한편으로 마음이 쓰렸다. 나의 생활, 나의 피곤, 나의 빈곤한 철학, 나의 시간, 내 외진 모든 길의 풍화작용이리라. 그것은 길이 나를 조금씩 허공으로 밀어올리고 있는 것임을 이 시를 통해 알았다. 구두가 다 닳아서 맨 나중에는 내가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