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생(生)의 지도에는 여러 갈래 '찔레나무' 가지들이 굽이쳐 있다. 그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으니 하나만 택할 수밖에. 그러나 그 끝에 이르렀을 때, 그래서 더 이상 가야 할지 아니면 되돌아와 다른 가지로 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 우리는 오래 하늘을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리석은 자벌레인 우리는.
허리와 머리와 무릎을 굽혀 가지런히 절하면, '나'라는 것은 맑은 물이 되어 순리(順理)대로 흐르고 고인다. 그때 그 절하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자벌레가 아니라 속으로 들어가는 자벌레인 셈이다. 그 사람의 말소리는 낮아지고 얼굴은 편안해지며 다투던 일도 줄게 된다. 절은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다. 낮은 데에 이르러야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저 우리가 갈구하는 진리(眞理) 말이다. 교회에 하나님이 있고 절에 부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낮은 곳, 힘들고 어려운 삶들, 그들에게 절하는 좌복이 없다면 높은 사람이 아니리.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