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모가 집에 오면 집안 분위기가 든든해진다. 보름날 밤이면 마당이며 옥상이며 한길가가 다 흥성흥성하다. 때아닌 맞선이라도 보자 하여 못이기는 척 나설 때 길가의 가로수들은 갑자기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무엇이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을 부풀게 한다. 그 분위기, 그 귀하디귀한 느낌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것은 다 달아나버리고 만다. 그러니 우리들 인생에 대한 '설명'이란 얼마나 수가 낮은 것인가. 나아가 제 설명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자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허망한가.
꽃나무에 꽃이 필 때, 그것도 '처음' 꽃이 필 때 무엇이 왔다고 말하는가. 오랜 기도의 응답이라고 해도 되리라. 그 꽃이 질 때, 신(神)은 처음으로 뒷모습을 조금 보이시리라. 흰 종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남은 얼룩, 어느 느낌이 다녀간 비틀린 얼룩, 우리 모두의 자서전이 그러하리라.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