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저편의 겨울
흰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눈먼 남자 둘이서
앞뒤로 나란히
구두와 지팡이의 리듬에 맞춰 걷고 있었다
앞의 남자가
더듬더듬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뒤의 남자는 앞의 남자의 등을
보호하듯 팔로 감싸며 따라 들어갔다
미소 띤 얼굴로
유리문을 닫았다 /한강
아무 말도 없다. 아무 말도 없을뿐더러 다른 어떤 소리도 지워진 채 구두와 지팡이의 또각거리는 소리만이 또렷하다. 다른 아무 움직임도 없다. 그저 백발이 된 맹인 남자 둘(그들은 자신의 머리가 백발인지 알지 못하리라!)의 우정 어린 한 장면만이 또렷하게 부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숙연히 바라봤을 또 한 사람의 눈빛을 상상한다. 아마도 겨울 하늘처럼, 유리창처럼 젖었으리라.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우정에 대하여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생각해본다.
우리가 보는, 보이는 것들이 과연 정말 세상인가? 이런 괴이한 질문이 온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도 있지 않은가. 가령 사랑 같은 것, 그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눈 감고 바라본다. 안 보이는 사랑. 안 보이는 사랑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봐야 하는 날짜들이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 그림 :유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