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鐘

시 두레 2013. 11. 12. 05:05

글 찾기(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晩鐘

 

                     구부린 등은 종이었다

 

                     해질녘,

                     구겨진 빛을 펼치는

                     종소리를 듣는다. 한 가닥

                     햇빛이 소중해지는

 

                     진펄밭 썰물 때면

                     패인 상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호밋날로 캐내는, 한 생애

 

                     쪼그린 아낙의 등 뒤로

                     끄덕이며 끄덕이며 나귀처럼

                     고개 숙이는 햇살

                     어둠이 찾아오면, 소리없이

 

                     밀물에 잠기는 종소리  /고찬규

 

 

   만추(晩秋)라는 놈이 찬비 뿌린 틈을 타 밀어닥쳐서는 마당을 온통 어질러놓았다. 갖가지 빛깔의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지천이다. 바람도 없는데 끊임없이 뚝뚝 떨어져 바닥에 앉는 한 생애들. 겨울나기를 위한 나무들의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길고 긴 종소리가 멀리서부터 오는 듯만 하다. 겸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저 나뭇잎만 같은 것이 아닌가.

 

   해 저무는 뻘밭에 등을 둥그렇게 말고는 조개를 캐는 아낙이 있다. 한 생애를 그 썰물의 개펄 속에서만 지냈다. 그녀에게서 문득 종소리가 들려온다. 저 가난하고 힘겨운 운명을 온몸으로 긍정한 거룩함이, 파동이 되어 저무는 햇빛과 함께 눈에 닿고 그리고 가슴에 닿는다. 가슴에 노을이 '울려' 퍼진다.

 

   밀레는 '만종'에 기도를 올리는 가난한 농부 부부를 그렸다. 그 종소리는 전 인류의 눈에 '울려' 퍼졌다. '나귀처럼' 운명에 순응하며, 곧 찾아올 어둠에 지워질 것이나 여전히 거룩한 생명. 밀물에 지워지는 한 소박한 생애를 생각하는 저녁이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그림:김성규

'시 두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질 무렵 어느 날  (0) 2013.11.14
저승길이 환해질 때  (0) 2013.11.13
수의 패션쇼  (0) 2013.11.11
後秋柳詩(후추류시) 가을 버들  (0) 2013.11.10
잠시, 천 년이  (0) 2013.11.09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