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을 대로 깊은 가을, 저무는 단풍들이 도심 고샅까지 뒤흔들며 가고 있다. 꽃보다 뜨겁게 타오르던 만산홍엽도 이제 떠나는 몸짓으로 스산하다. 앙상한 뼈대 같은 나뭇가지들만 전열을 가다듬듯 결연한 자세로 찬바람을 맞는다. 그 사이로 아직 남아 있는 단풍 끝물이며 마른 풀잎들이 바람을 붙잡다 놓치다 몸부림을 친다. 미련 같은, 회한 같은 쓸쓸함 속으로 미처 불태우지 못한 채 입동을 맞은 어물쩍 단풍의 당혹감 같은 게 스친다.
항상 그랬던가. 하고 보면 뭔가 늘 놓치거나 뒤늦게 허둥대는 회한 따위를 더 많이 끼고 왔지 싶다. 올해도 원하던 시나 사랑이나 먼 산 너머로 지나갔는지 소출이 턱없이 허전하다. 시절을 변명 삼아 넘어온 탄식의 반복. 그렇게 '잠시, 천년이' 가버린 것인가. 아니 가버릴 것인가. 그런데 너는 '오지도 않고 / 이미 다녀'간 것인가. 다시 또 잎 다 진 등나무 아래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것인가.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올라가는 등나무, 어느 생에 다시 만나 마음을 저리 꽃피워볼까 ./정수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