夙夜齋望倻山
(숙야재망야산)
가야산을 바라보고
未出全身面 (미출전신면)
큰 산의 진면목을 안 드러내고
微呈一角奇 (미정일각기)
기묘한 한 모퉁이 살짝 보였네.
方知造化意 (방지조화의)
조물주의 깊은 뜻을 잘 알겠거니
不欲露天機 (불욕로천기)
천기를 까발려서 다 보여줄까?
/정구(鄭逑·1543~1620)
조선조 시대의 저명한 유학자 한강(寒崗) 정구 선생이 지은 시다. 61세 되던 1603년 겨울에 경상도 성주에서 지었다. 그해 9월 관료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집 북쪽에 숙야재(夙夜齋)를 짓고 머물 때였다. 남쪽 멀리에는 가야산이 버티고 서 있는데 그날따라 흰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서 산의 모퉁이만 살짝 드러났다. 산 전체를 감추고 시야를 가로막은 구름을 보면서 자연과 사회의 진실에 대해 생각해본다. 구름에 덮인 산처럼 모든 현상의 진실이 전체가 까발려져 다 드러나는 법은 없다. 그래도 기묘한 한 모퉁이는 보여주어 알 수 있는 길을 터놓았으니 친절하다. 그 모서리를 통해 숨겨진 전체와 진실을 알아가자. 조물주가 오늘 그에게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오늘의 우리도 구름에 덮인 가야산을 보는 처지다. 기묘한 한 모퉁이를 통해 천기를 꿰뚫어볼 수는 없을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