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하 - 호
■ 하도낙서 河圖洛書
[강 하/그림 도/물 락/글 서]
☞「주역」의 팔괘와 「서경」중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바탕이 되었다는 상형도/구하기 힘든 어려운 옛 도서
[출전]『書經』
[내용]
하도(河圖)는 복희(伏羲)가 황하(黃河)의 용마의 등에서 얻은 그림으로, 이것에 의해 복희는 역(易)의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하며, 낙서(洛書)는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의 거북의 등에서 얻은 글로, 이것에 의해 우(禹)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으로서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위서(緯書)에 있는 하도낙서는 칠경(七經)의 위서와 함께 전한(前漢) 말에서 후한(後漢)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 하도제람희(河圖帝覽嬉) 용어하도(龍魚河圖) 낙서영준청(洛書靈準聽) 낙서견요도(洛書甄曜度)등 많은 종류가 있다. 칠경의 위서와 함께 참위설(讖緯說)의 주요자료로 많은 일문(逸文)을 남기고 있다.
■ 하로동선 夏爐冬扇
[여름 하/화로 로/겨울 동/부채 선]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시기를 놓쳐 쓸모없는 사물/일이 격에 맞지 않음
[출전]왕충(王充)의 《논형(論衡)》 〈봉우편(逢遇篇)〉[원문]
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 (작무익지능 납무보지설) 獨如以夏進爐以冬奏扇 亦徒耳(독여이하진로이동주선 역도이)
[내용]이로울 것이 없는 재능을 바치고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바치고 겨울에 부채를 드리는 것과 같다
[참고1]
왕충은 후한(後漢)의 학자이자 사상가로,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지녀, 선비적 사상이나 속된 신앙, 유교적인 권위를 비판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논형(論衡)》은 당시의 전통적인 정치와 학문을 비판한 내용의 저술이다.
왕충은 이 글에서 '벼슬길에 나아감에 있어서의 운명'이라는 것을 의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학문이 높고 재능이 있는데도 연이 닿지 않아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하로동선'처럼 취급하여 너무 쉽게 말하며 비난하는 것을 비웃고 있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연이 닿지 않으면 유익한 진언을 해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반대로 군주의 부덕을 지적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복을 받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여름의 화로라 해도 그것으로 젖은 것을 말릴 수도 있고, 겨울의 부채라 해도 그것으로 불씨를 일으키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물건은 사용하기에 따라 유용하기 마련'으로 무용지물은 없다는 것이다. 즉, 주군의 마음속은 신하가 헤아릴 수 없으므로, 학문과 재능의 유무보다는 군주의 취향에맞느냐의 여부로 신하의 운명은 결정된다고 본다. 여기서 '하로동선'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철에 맞지 않는 물건이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참고2]
부채란‘부치는 채’라는 말인데, 한자 선(扇)은 새의 깃털(羽)로 집(戶)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다. 부채는 고대부터 더위를 식히거나 공기를 순환시키거나 의식을 거행할 때 쓰이던 물건
[반]
하갈동구[夏葛冬구(求+衣) ]여름에는 베옷 겨울에는 가죽옷 --일이 격에 맞음
■ 하마평 下馬評
[내릴 하/말 마/평할 평]
☞관직의 인사이동이나 관직에 임명될 후보자에 관하여 세상에 떠도는 풍설(風說). 예전에, 관리들을 태워 가지고 온 마부들이 상전들이 말에서 내려 관아에 들어가 일을 보는 사이에 상전들에 대하여 서로 평하였다는 데서 유래.
[내용]
하마평(下馬評)이란 말의 유래는 옛날 가마 또는 말의 상류층 사람들이 이용하던 대표적 교통 수단이었는데, 교통 표지는 그때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마비(下馬碑)이다. 하마비에는‘모두 말에서 내리시오.(大小人員皆下馬)’라고 적혀 있었다. 가마나 말에서 내린 주인이 볼일을 보러 가고 없는 동안 가마꾼이나 마부는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끼리 잡담을 나누게 되었고 별의별 애기가 다 나왔다. 그들의 주인은 고급 관리가 대부분인지라 이야기의 중심도 자연히 출세 진급 따위의‘자리’에 관계된 것이 많았다.
전제 군주시대의 왕은 권위와 복종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궁궐을 포함한 주위의 일정 지역(종묘, 공자 사당, 장군, 고관 출생지 및 무덤 등)은 금역(禁域)이라하여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랐으며 이곳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게 하는 하마비(下馬碑)를 세웠다. 그러므로 하마비 주위에는 늘 사람이 들끓었다. 일반 평민들이 모이는 곳이 시정(市井)이라면 그래도 이곳은 좀 높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였던 셈이다. 이곳에서 누가 어떻고 누가 어떻고 하는 인물평이 나돌게 되었으며, 장차 관직에 오를 후보에 대한 평도 나돌았다. 이 수군거림이 '하마평'이다.
[예문]
▷ 이번 8·7개각을 앞두고서도 언론에서는
언제나처럼 하마평이 무성했습니다
. 하마평의 대상이 된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론의 ‘지상발령’에 그쳐 ‘좋았다 말았을’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다행히 ‘낙점’으로 이어져 입각의 기쁨을 누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마평이란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언론을 통한 사전검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21>에서
▷ 세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 장관 교체를 기정사실화하며
후임 장관의 하마평
을 거론해왔다. 최근 들어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이는 청와대 김영주 경제수석이다<2006 전자신문>
■ 하석상대 下石上臺
[아래 하/돌 석/위 상/집 대]
☞아랫 돌 빼서 윗돌 괴기-임시변통으로 둘러맞춤
[동]
상석하대[上石下臺]/상하탱석[上下撑石]/고식지계[姑息之計]/미봉책[彌縫策]
[속담]
언 발에 오줌누기[동족방뇨 凍足放尿]
[예문]
▷ 음란원천인 해외사이트차단, 관리소홀 업자 처벌강화 등 다양한 인터넷 음란물 차단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이 하석상대(下石上臺,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괸다)와 같은 일시적 조치는 아닐 것이다.<2007.3 노컷뉴스>
▷ 광주공항 국제선의 무안공항 이전은 무엇보다 실효성 및 현실성이 없는 ‘아랫돌을 빼내어 윗돌에 괴고 윗돌을 빼서 아랫돌에 괸’근시안적 계획이라는 지적이다.<2007.10 네이버뉴스>
■ 하옥 瑕玉
[흠 하/옥 옥]
☞티가 있는 구슬, 즉 옥의 티라는 말로, 공연한 짓을 하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출전『회남자』 세림훈(說林訓)
[내용]
"쥐구멍이 있다고 하여 그것을 뜯어고치려고 한다면 동네 대문을 부수게 되고, 여드름을 짜다 보면 뾰루지나 종기가 된다. 이것은 흠이 있는 진주와 티가 있는 구슬을 그대로 두면 온전할 것인데, 흠과 티를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이지러뜨리고 깨뜨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것은 구슬의 티를 제거하기 위해 서투른 솜씨로 나섰다가는 도리어 망가뜨려 전혀 가치가 없는 물건으로 만들고 만다는 말이다.
또 이런 글도 보인다. "표범의 털가죽이라도 복잡하면 여우 털가죽의 순수함만 못하다. 흰 구슬이 티가 있으면 보배로 만들지 못한다. 이것은 순수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옥의 티'라고 하면 완벽한 것에 조그만 한 흠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어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쓰이고 있다
■ 학경불가단 鶴脛不可斷
[학 학/종아리 경/아니 불/옳을 가/자를 단]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
[출전]
『莊子』
[내용]
오리 다리가 짧다고 늘이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줄이지 말라☞ 사물에는 각자 자연히 갖추어진 개성이 있으므로 사람이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좋지 않음/사물에는 각각 주어진 성질이 있으므로 과부족이 없음/사물에는 각각 적절한 면이 있으므로 함부로 손익(損益)해서는 안됨
[원문]
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
부경수단 속지즉우 학경수장 단지즉비
**鳧 오리 부
■ 학수고대 鶴首苦待
[학 학/머리 수/괴로울 고/기다릴 대]
☞학이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기다림. 몹시 기다림.
[동]연경거종(延頸擧踪) 목을 길게 늘이고 발뒤꿈치를 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오는 것을 몹시 기다린다는 말./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 하루가 삼 년 같다는 뜻으로,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의 비유.
[예문]
스페인의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은 14일 나이지리아와의 첫 경기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비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고 백. 클레멘테 감독은 "뜨거운 날씨에는 아무래도 우리보다 나이지리아가 익숙한 것이 사실"이라며 "비가 내려 운동장의 열을 식혀주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설명.<연합통신 98>
■ 학철부어涸轍鮒魚
[마를 학/수레바퀴 철/붕어 부/물고기 어]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학(水+固), 부(魚+付)≒
涸鮒, 涸鮒
[출전]『莊子』
[내용]
장주(莊周:장자)는 집이 가난하였다. 그래서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그러나 감하후가 말하기를, "장차 내 봉읍(封邑)에서 사금을 받아들이려 하는데, 그것을 받아서 삼백 금쯤 꾸어 주겠다" 하였다. 이에 장주가 화를 내며 안색을 고치고 말하였다.
내 어제 이리로 올 때, 도중에 누가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 속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다. 내가 그놈을 보고, "붕어야, 왜 그러느냐" 하자, 붕어가 말하기를, "저는 동해의 파신(波臣)입니다. 어디서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저를 살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좋다. 나는 지금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가서 시장강[西江]의 물을 터놓아 너를 맞아가게 하겠다. 그래도 되겠느냐?" 하였다. 그러자 붕어가 화를 내고 안색을 고치며 말하기를, "저는 제가 있어야 할 물을 잃어, 지금 있을 곳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찌감치 건어물(乾魚物) 가게로 가셔서 저를 찾으십시오"라고 하였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와의 대화를 빌려, 부질없는 의문에 관심을 두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의(第一義)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먼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에 대한 비유이다. 이 말은 철부지급(轍부之急), 학철지부(학轍之부)라고도 한다. <두산백과>
■ 한난염량 寒暖炎凉
[추울 한/따뜻할 난/더울 염/서늘할 량]
☞ 차가움과 따뜻함, 더움과 서늘함 곧, 흐르는 세월
[예문]
■ 한단지몽 邯鄲之夢
[땅이름 한/나라이름 단/어조사 지/꿈 몽]
☞한단의 꿈. 부귀와 공명이 꿈처럼 덧없다.**한단--조나라 수도
[동]
盧生之夢(노생지몽). /邯鄲之枕(한단지침). /黃梁一炊之夢(황량일취지몽) : 노생이 잠들기 전에 짓던 기장밥이 꿈에서 깨어보니 아직 익 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음.
[유]
南柯一夢(남가일몽) /一場春夢/白日夢
[속담]
인생은 풀 끝 이슬이다.
[출전]『枕中記』
[내용]
唐나라 현종(玄宗) 때 도사(道士) 여옹(呂翁)이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여관 앞에서 쉬고 있을 때, 노생(盧生)이라는 청년을 만나 담소하다가 노생이 자신의 비천함을 한탄했다. 여옹이 그에게 소원을 묻고 청자(靑磁)로 만든 베개를 주니, 그것을 베고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노생이 꿈 속에서 청하의 최씨딸과 결혼하고 진사갑과에 급제하여 여러 번 옮겨서 중서시랑 겸 중서문하평장사에 임관되었다.
30여 년 조정을 출입하다 보니 높고 성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늙어 벼슬에서 물러나려고 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벼슬을 마치고 하품과 기지개를 켜다가 잠에서 깨어났다.여옹이“인생이란 모두 이것과 같다네.”노생이“이것을 경험한 것은 선생께서 제 욕심을 막아 주신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라 하고 공손히 절한 뒤 길을 떠났다.
[원문]
生이 于寢中에 娶淸河崔氏女하고 擧進士登甲科하여 累遷하여 拜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하다. 三十餘年出入中外하니 崇盛無比라. 老乞骸骨하니 不許하다. 卒于官하고 欠伸而寤하다.** 枕(베개 침) 梁(기장 량) 炊(불땔 취) 寢(잠잘 침) 娶(장가갈 취) 欠(하품 흠) 寤(잠깰 오)
[예문]
소유는 본디 하남땅 베옷 임은 선비라 성천자 은혜를 입어 벼슬이 장상에 이르고 제낭자 서로 좇아 은정이 백 년이 하루 같으니 만일 전생 숙연으로 모두 인연이 진하면 각각 돌아감은 천지에 떳떳한 일이라. 우리 백년 후 높은 대 무너지고 굽은 못이 이미 메이고 가무하던 땅이 이미 변하여 거친 뫼와 쇠한 풀이 되었는데 초부와 목동이 오르내리며 탄식하여 가로되,‘이것이 양승상의 제낭자로 더불어 놀던 곳이라. 승상의 부귀풍류와 옥용화태 이제 어디 갔나뇨.’하리니
어이 인생이 덧없지 아니리요
.[김만중(金萬重),『구운몽』 (九雲夢)]
■ 한단지보 邯鄲之步
[땅이름 한/나라이름 단/어조사 지/걸음 보]
☞자기의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면 양쪽 다 잃게 된다
[동]
한단학보[邯鄲學步]
[유]
追二兎不得二兎
[출전]
『장자』
秋水篇(추수편) [원문]且子獨不聞 夫壽陵餘子之學行于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匍而歸耳 今子不法 將忘子之故 失子之業 公孫龍口 而不合 舌擧而不下 乃逸而走.
[내용]
장자의 선배인 위모와 명가인 공손용과의 문답형식으로 된 이야기 가운데 위모가 공손용을 보고 이렇 게 말했다.
「또한 당신은 수릉의 젊은 사람이 조나라 서울 한단으로 배우러 갔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그 젊은 사람은 아직 조나라 걸음걸이를 다 배우기도 전에 원래 걷고 있던 걸음걸이 마저 잊고 설설기며 겨우 고향으로 돌아갔다지 않는가? 당장 그대가 가지 않는다면 장차
그대의 방법을 잃고 그대의 본분을 잃어버릴 것일세
." 공손룡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혀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아, 곧 달려서 도망쳐 갔다.」 조나라는 큰나라, 연나라는 작은 나라 다. 한단은 대도시, 수릉은 시골도시다. 그 시골 도시 청연이 대도시를 동경한 나머지 격에 맞지 않는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자기가 걷던 걸음 걸이 마저 잊고 엉금엉금 기는 시늉을 하며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 한발 旱魃
[가물 한/ 가물귀신 발]
☞가뭄을 몰고 오는 신화 속의 여신.
[출전]
『三黃五帝』
[내용]
삼황(三皇)이란,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를 말한다. 특히 황제 헌원씨 때에는 사람이 움집이 아닌 집을 만들고 삼베로 옷짜는 것을 고안했다. 약초를 조사하고 의료술을 개발하는 등의 업적을 쌓은 황제가 산동성의 태산으로 행차한 적이 있었다.
큰 코끼리가 이끄는 보차(寶車)를 타고 온갖 신들을 거느린 이 행렬을 못마땅히 여긴 것은 호랑이와 이리떼를 대동한 치우(蚩尤)였다. 그는 바람이 신(風伯)과 비의 신(雨師)을 거느린 괴이한 난폭자였다. 치우는 자기와 같은 몸집을 한 괴신(怪神) 72명과 힘을 합쳐 불평을 일삼던 풍백· 우사를 불러 반기를 들었다.
황제(黃帝)는 치우의 모반 소식을 듣고 판천에서 맞서 기세를 꺾은 다음 탁록에서 두 번째 결전을 벌였다. 황제의 군사는 사방의 신들을 무장으로 삼아, 곰·큰곰·호랑이 등을 훈련시켜 치우의 군대를 대적케 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치우의 군대는 풍백과 우사의 활동으로 큰 바람을 일으켜 폭우를 뿌렸다. 짙은 안개를 흩트려 놓고 동(銅)머리에 쇠 이마를 지닌 괴인 군과 도깨비, 허깨비, 요괴 군들이 안개 속을 헤집으며 신출귀몰하여 날뛰었다.
황제 헌원은 그들과 8전8패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헌원은 안개 속을 헤집으며 적을 공격하는 지남차를 발견하여 적과 맞섰으며, 천상에 있는 딸 발(魃)이라는 여신을 불러내 풍백·우사가 일으킨 풍우와 농무를 흩뜨려 버렸다. 결국 치우는 힘이 소진되어 황제 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발이라는 여신은 용모도 추했지만 대머리였다. 싸움이 끝나자 온 힘을 다해 치우의 군대와 맞섰기 때문에 힘이 빠져 하늘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땅 위에 있자 가뭄이 찾아왔다. 그녀가 있는 곳엔 비 한 방울이 내리지 않는 메마른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한발(旱魃)이란 부르며 원망하게 되었다.
■ 한우충동 汗牛充棟
[땀 한/소 우/가득찰 충/마룻대 동]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뻘뻘 흘리고 방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을 만큼 책이 많다.
[동]
옹서만권(擁書萬卷)*낄 옹/오거지서(五車之書)
[출전]
柳宗元 『陸文通先生墓表』
[내용]공자(孔子)께서 춘추(春秋)를 짓고서 1500년이 지났다.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이 다섯 있는데, 지금 그 셋을 쓴다. 죽간(竹簡)을 잡고 생각을 초조하게 하여 써 읽고 주석(註釋)을 지은 자가 백천(百千)이나 되는 학자가 있다.
그들은 성품이 뒤틀리고 굽은 사람들로, 말로써 서로 공격하고 숨은 일을 들추어 내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지은 책들은 집에 두면 '
창고에 가득 차고', 옆으로 옮기려면 '소와 말이 땀을 흘릴' 정도
였다. 공자(孔子)의 뜻에 맞는 책이 숨겨지고, 혹은 어긋나는 책이 세 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후세의 학자들은 늙은을 다하고 기운을 다하여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돌아보아도 그 근본을 얻지 못한다. 그 배우는 것에 전념하여, 서로 다른 바를 비방하고, 마른 대나무의 무리가 되며, 썩은 뼈를 지키어 부자 (父子)가 서로 상대를 상처내고, 임금과 신하가 배반하기에 이르는 자가 전 세 상에는 많이 있었다. 심하도다. 성인(聖人) 孔子의 뜻을 알기가 어렵도다.
[원문]孔子作春秋 千五百年 以名爲傳者五家 今用其三焉乘?牘 焦思慮以爲讀注疏說者 百千人矣 攻??怒 以辭氣相擊排冒沒者 其爲書 處則充棟宇出則汗牛馬 或合而 隱 或乖而顯 後之學者 窮老盡氣 左視右顧 莫得其本 則專其所學以?其所異 黨 枯竹 護朽骨 以至於父子傷夷 君臣?悖者 前世多有之 甚矣 聖人之難知也.
■ 할계언용우도 割鷄焉用牛刀
[가를 할/닭 계/어찌 언/쓸 용/소 우/칼 도]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대책을 씀
[출전]
『논어(論語)』양화(陽貨) 편
[동]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보고 칼빼기
[내용]공자(孔子)의 제자 자유(子由)는 노나라의 작은 읍 무성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공자에게서 받은 예악(禮樂)에 의해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힘을 다했다.
하루는 공자가 두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자유를 찾아왔다. 그때 마을 곳곳에서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리오?"
자유가 대답했다. "이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조금 아까 한 말은 농담으로 한 것일 뿐이다."
사실 공자가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라고 한 것은 자유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재인데도 이런 작은 읍에서 성실하게 하는 것이 보기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요즘 이 말은 공자의 본 뜻과는의미가 바뀌어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큰 인물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비유한다.
■ 할고담복 割股啖腹
[가를 할/다리 고/먹을 담/배 복]
☞공복을 채우기 위해 제 허벅살을 뜯어먹는다
한 때의 곤란만 면하려는 어리석은 잔꾀/눈앞의 이익만을 꾀하다가 신세를 망침
[동]
割股充腹
■ 함흥차사 咸興差使
[다 함/일어날 흥/어긋날 차.사신 사]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더디 오다. 감감 무소식.**함흥-지명/차사--사신
[동]
終無消息(종무소식) /
강원도포수
-강원도에는 산이 많고 또 겹겹이 험하기 때문에 포수가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니 밖에 나갔다가 오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
함안차사 (咸安差使)
[내용] 태조 이성계가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 후 형제를 무참히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차지한 태종의 행위에 분노한 태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그 차사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은 데서 유래한 말.
[참고1]差使員(차사원)
: 조선시대 때 각종 특수 임무의 수행을 위하여 임시로 차출, 임명된 관리.‘差’는‘시키다’‘파견하다’‘심부름하다’‘使’는‘명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차사란 일정한 용무를 주어 딴곳으로 파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참고2]함안차사 (咸安差使)
--확실한 연대와 인물은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의 일인 듯 짐작된다.그 당시 한 사람이 대역죄를 지었는데 조정에서 안핵사까지 내려 보내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 죄인에게는 노아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천하 절색일뿐만 아니라 가무며 학문이 능하고 구변이 청산유수이어서 한번 본 남자는 그녀의 치마폭에 놀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노아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의 생명을 구하고자 스스로 기적에 입적하여 관리들을 홀려 그들의 약점을 이용, 아버지를 벌주지 못하게 하였다. 안핵사로 내려올 때마다 지방 관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핑계로든 잔치를 베풀게 하였고 그 자리에는 반드시 그녀가 참석하여 미색과 가무, 그리고 모든 아양을 떨어 그때마다 수청을 자청하여 안핵사로 하여금 본분의 일을 잊고 주색에 빠지게 하여 차일피일 하다가 돌아가거나 봉고 파직케 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성품이 강직, 청렴하고 과단성이 있는 젊은 관원을 뽑아 안핵사의 임명하여 그 죄상을 낱낱이 밝히도록 하였다.이에 신임 안핵사는 호언장담하기를"이제 기생을 가까이 아니하고 술을 멀리하여 관리들을 희롱한 노아부터 처벌한 다음 그의 아비를 다스릴 것이다."라며 안핵길에 올랐다.한편 노아는 밀정을 풀어 신임 안핵사의 일거일동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는 계획을 마련, 안핵사가 칠원현 웃개나루에 당도하여 객주집에 들러 점심을 들게 하였다.
노아는 계획이 적중함을 기뻐하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지점에서 소복단장으로 구경꾼 속에 끼어 들랑 달랑 하며 안핵사의 시선을 끌기에 노력하였다.안핵사의 낯선 고장의 산천경개와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노독을 풀던 중 무심코 구경꾼들을 쳐다보니 멀게 가깝게 아른거리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는데, 천상의 선녀가 하계하여 노니는 듯, 백학이 알을 품고 구름 속에서 춤을 추듯, 벌 나비가 꽃밭에서 춘광을 희롱하듯 하여 정신이 아득하고 눈앞이 삼삼하여 황홀경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이곳은 타고을이라 잠시 방심한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하룻밤 유숙하기를 명하고 주인을 불러 넌즈시 소복여인에 대해 물었다. 주인은 한숨만 쉬면서 말이 없더니 '그 아이는 누구의 딸이 온데 박복하게도 얼마 전 남편과 사별하고 시가에서도 의탁할 길이 없어 잠시 소인에게 돌아와 있는 중이옵니다.'하였다.
안핵사는 속으로 '옳다 구나!'하며 무릎을 치고는 슬그머니 주인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며 오늘밤 상면케 해줄 것을 청했다. 주인은 딱 잡아떼며 말하기를"여식은 비록 비천한 소인의 소생이 오나 내칙제서(內則諸書:여자의 행실과 법도를 적은 책)며 일반 학문을 익혀 정절을 소중히 하고 있사오니 천부당 만부당 한 줄로 아옵니다."하였다. 더욱 초조하고 마음이 들뜬 그는 애원조로 거듭해서 간청하자 못이기는 체하는 말이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하였으니 부디 버리지 않는다는 약조만 하신다면 한 번 권하여 보겠나이다."하니 그는 그러마고 거듭 다짐하며 멋모르고 좋아했다.
일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니 능청스런 노구와 간교한 노아는 기뻐 어쩔 줄 몰라했는데 이윽고 해가 지고 밤이 이슥하자 주안상을 곁들여 안핵사의 방을 찾아 들었다.낮에는 먼 발치로 어름어름 보았으나 곱게 단장하여 촛불 앞에 앉은 노아를 본 순간 빼어난 절색에 그만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으며, 무상한 인생과 덧없는 세월로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하였다.그럭그럭 회포를 풀고 동침을 권하자 노아는 안색마저 변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럴수록 애간장이 탄 그는 섬섬옥수를 부여잡고 간청하니 대장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자 노아는 이제는 되었겠지 생각하고 마지 못하는 척하며 응하면서 다시는 버리지 않겠다는 자문을 받은 후에 원앙금침 속에 들었다.함안에 도착한 안핵사는 왕법을 문란케 한 요녀 노아를 대령시켜 극형에 처하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동헌 앞뜰에 끌려 온 노아는"능지처참의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마땅히 공사(供辭;변명서)를 보시고 결정함이 국법이온데 무조건 벌 주심은 과한 줄 아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공사를 먼저 보시업소서!"하니 안핵사가 그 말을 옳게 여겨 공사를 보니 아비의 사연을 먼저 쓰고 끝에 시 한 구절을 적었다.
노아옥비 시수명 (盧兒玉臂 是誰名) - 노아의 옥같은 팔에 그 누구의 이름인고,
각입기부 자자명 (刻入肌膚 字字明) - 살갗에 깊이 새겨 자자히 완연하다.
영견낙동 강수진 (寧見洛東 江水盡) - 차라리 낙동강 물의 마름을 볼 지언정
첩심종불 부초맹 (妾心終不 負初盟) - 이몸이 맺은 맹서 변할 줄이 있으랴.
안핵사는 깜짝 놀라 바라보니 지난 밤에 만나 백년 천년을 같이 하자던 그녀가 아닌가? 비로소 그녀의 간계에 속은 것을 알았으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안핵사는 갑자기 병을 빙자하여 치죄를 중지하고 영원히 관직에서 물러 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강원도 포수나 함흥차사와 같이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함안차사란 말이 생겨났다
고 한다.
[예문]
일본 사령관은 키스카 섬의 기상을 파악하기 위해 잠수함이나 함선을 보냈으나 `함흥차사'였다. 이젠 전적으로 기상장교의 예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이번에는 안개가 낍니다.” 연필 한 자루에 운명을 걸고 일기도를 그려가면서 안개가 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기상장교는 최종적으로 일기도 위에 `안개'라고 써 넣고는 사령관에게 보고한다.<국방일보>
■ 합종연횡 合縱連橫
[합할 합/세로 종/이을 연/가로 횡]
☞공수(攻守)동맹의 뜻, 남북으로 합류하고 동서로 연합한다는 뜻으로, 강적에 대항하기 위한 권모 술수의 전략을 말함.
[출전]
『史記』
[내용]
한전국시대 말경 소진이 진에 대항하기 위하여 남북의 여섯나라(한,위,조,연,제,초)를 동맹시킨 외교책--합종/소진이 피살된후 장의가 이들 여섯나라를 동서로 묶어 진을 섬기게한 외교책--연횡 ☞ 합종연횡[합종연회라고도 씀]은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의 두 외교정책을 합한 말로, 국제 무대에서의 외교적 각축전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합종의 종은 종(縱)의 뜻으로 남북을 뜻하고 연횡의 횡(衡)은 횡(橫)의 뜻으로 동서를 말한다. 이 말을 외교정책으로 처음 들고 나온 것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였다.
전국시대는 이른바 칠웅(七雄)이 할거해 있던 시대로 서족으로 진나라가 강대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동쪽으로 나머지 여섯나라가 남북으로 줄지어 있었다. 소진은 여섯나라가 남북 으로 합작해서 방위동맹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공존공영의 길이라고 주장하여 이를 「합종」이라 불렀고, 이에 맞서서 장의는 약한 나라끼리 합종을 하는 것 보다는 강한 진나라와 연합하여 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고 하여 이를 「연횡」이라 불렀던 것이다. 소진과 장의는 먼저 이 「합종책」을 들고 나와 6국의 군사 동맹을 성공시킨 다음 그 공로로 6국의 제상직을 한 몸에 겸하고 자신 은 종약장(從約長)이 되어 6국의 왕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소진의 이 정책을 깨뜨리기 위해 각국은 개별적으로 찾아 다니며 진나라와의 연합책만이 안전한 길이란 것을 설득시켜 소진의 합종책이 사실상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것이 장의였다. 전국 백년의 역사는 이 합종과 연횡이 되풀이한 역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두고두고 말썽이 되어왔다. 그래서 제자백가중 외교무대에서 세치 혀로 활약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종횡가라고 한 것도 이 합종연횡에서 나온 이름 이었다
■ 항려지년 伉儷之年
[짝 항/짝 려/해 년]
☞장가들고 시집갈 나이 **항려=配偶(배우)
■ 항룡유회 亢龍有悔
[목 항/용 룡/있을 유/뉘우칠 회]
☞절정에 이른 용은 자칫 후회하기 쉽다. 영달을 다한 자는 더 이상 오를 수 있는 길도 없으며, 쇠퇴할 염려가 있다
[출전]『易經』 乾掛
[내용]
중국 사람들이 끔직이 섬기는 동물에 '사령(四靈)'이란 것이 있다. 용(龍) · 봉황(鳳凰) · 기린(麒麟) · 거북이다. 각기 상징성을 부여했는데 용은 황제, 봉황은 길상의 상징이다. 기린은 자손과 행복, 거북은 건강과 장수의 상징이다. 사령 중 으뜸인 용은 그 생김새가 호랑이의 머리에 뱀의 몸뚱이, 독수리의 발톱, 사슴뿔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가공의 동물임에도 중국 사람들이 용에 대한 기대는 대단하고 그들만큼 용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용을 숭상하는 까닭은 용이 지닌 무한한 능력 때문이다. 이놈은 작아지려고 마음 먹으면 번데기만 해지지만 커지려고 하면 천하를 뒤덮을 수 있다. 아래로는 깊은 연못에 잠길 수도 있는 반면 위로는 구만리 창천(蒼天)을 솟구칠 수도 있으며 비구름을 마음대로 부린다. 여의주(如意珠)라도 입에 무는 날이면 온갖 조화를 부린다. 한마디로 무소불능(無所不能)의 존재인 것이다.
중국 첫 황제인 황제(黃帝)의 상징인 황룡(黃龍), 나이가 8백세라는 청룡 (靑龍), 적룡(赤龍), 흑룡(黑龍) 등 오색 용은 천지를 이룩하고 있는 용들이다. [회남자(淮南子)]에 보면 날개 달린 비룡(飛龍)이 뭇 날짐승을 낳았고, 네발이 달린 응룡(應龍)이 뭇짐승을 낳았으며 교룡(蛟龍)이 뭇 고기를 낳았다 했다. 이처럼 중국의 천지와 모든 생물의 계보를 더듬어 올라가면 용으로 귀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앉는 좌상을 용상(龍床)이라 하고
임금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용가(龍架),
임금이 타고 다니는 말을 용기(龍騎),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을 용기(龍旗),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의 자손을 용종(龍種)이라 함을 미루어 봐도 용이 최고 통치권자를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왕조의 성을 바꾸는 역성(易姓) 혁명을 할 때 용종 곧 용의 후손임을 입증시켜 쿠데타에 대한 백성의 반감을 수렴하려 했던 사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용종임을 자처하고 그 물증으로서 용린(龍鱗), 곧 용비늘을 고려 왕조 대대로 계승해 내렸었다. 이 고려의 용비늘에 대한 조선조 중종 때의 기록을 보면, 잘 살펴보니 태모갑을 깎아 용비늘처럼 만든 것이라 했다. 이 용비늘은 명종때 난 경복궁의 불로 타 없어졌다.
주역(周易)의 건괘(乾掛)는 용(龍)이 승천하는 기세,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남성적 기운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운세를 단계별로 용(龍)에 비유하고 있다.
곧 연못 깊이 잠복해 있는 용(잠용 潛龍)은 덕(德)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런 다음 땅위로 올라와 자신을 드러내는 용(견용 見龍)이 되면 비로소 덕 (德)을 만천하에 펴 훌륭한 군주(君主)의 신임을 받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하늘을 힘차게 나는 용(비룡 飛龍)이다. 이것은 본 괘(掛)의 극치로서 제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덕(德)을 갖추었으므로 훌륭한 신하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보필한다.
이렇게 하여 절정의 경지에 이른 용(龍)이 항룡(亢龍)이다. 승천(昇天)한 용 (龍)인 셈이다. 하지만 물극즉반(物極則反-만물이 극(極)에 차면 기우는 법),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지 않았는가. '항룡(亢龍)'에 대한 공자(孔子)의 해석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곧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항룡(亢龍) 에 이르면 후회(後悔)하기 쉽상이니 이것이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것이다. 물론 항룡유회(亢龍有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만과 무시보다 덕을 쌓고 처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잃었던 민심(民心)을 회복하는 길 뿐이다. 요컨대 건괘(乾掛)는 우리에게 변화에 순응할 것과 겸손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항산항심 恒産恒心
[항상 항/재산 산/마음 심]
☞재산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김.
[출전]『孟子』
[내용]
맹자(孟子)가 유세(遊說)에 실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 산동현(山東縣)에 돌아와 쓸쓸히 만년을 보낼 때의 일이다.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등(騰)이라는 소국(小國)이 있었다. 그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등문공(騰文公)은 그를 국정(國政)의 고문(顧問)으로 초빙했다.
맹자(孟子)가 오자 그는 대뜸 치국(治國)의 방책을 물었다. 사실 맹자(孟子)는 위민정치 이념에 투철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늘 통치자 보다는 백성의 입장에 서서 정치를 논했다. 그는 문공(文公)에게 왕도정치를 설명하면서 그 첫걸음은 백성들의 의식주를 만족하게 해주는데 있다고 했다. 제 아무리 인의(仁義)니 도덕을 강조한들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사상누각 (砂上樓閣)에 불과할 뿐이다. 곧 민생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유항산(有恒産)이면 유항심(有恒心)입니다 (변치 않는 재산이 있으면 변치 않는 마음도 있는 법)."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 향복무강 享福無彊
[누릴 향/복 복/없을 무/굳셀 강]
☞ 끝없이 많은 복을 누림
[예문]
▷ 김구 시조 <자암집(自庵集)>
오리의 짧은 다리 학의 다리 되도록애
검은 가마귀 해오라비 되도록애
향복무강(享福無彊)하샤 억만세를 누리소서.
▷ 感君恩--조선초, 속요체 악장
(1장)
四海(사해) 바닷 기픠는 닫줄로 자히리어니와,
님의 德澤(덕택) 기픠 어느 줄로 자히리잇고,
享福無彊(향복 무강 )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享福無彊(향복 무강)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一竿明月(일간명월)이 亦君恩(역군은)이샷다.
(2장)
泰山(태산)이 놉다컨마라난 하늘해 몬 밋거니와
님의 놉파샨 恩(은)과 德(덕)과는 하늘가티 노파샷다.
享福無彊(향복 무강 )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享福無彊(향복 무강)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一竿明月(일간명월)이 亦君恩(역군은)이샷다.
(3장)
四海(사해) 넙다한 바다한 舟楫(주즙)이면 건너리어니와
님의 너브샨 恩澤(은택)을 此生(차생)에 갑소오릿가.
享福無彊(향복 무강 )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享福無彊(향복 무강)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一竿明月(일간명월)이 亦君恩(역군은)이샷다.
(4장)
一片丹心(일편단심)뿐을 하날하 아라쇼셔.
白骨미粉(백골 미분)인들 丹心(단심)이딴 가새리잇가
享福無彊(향복 무강 )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享福無彊(향복 무강)하샤 萬世(만세)를 누리쇼셔.
一竿明月(일간명월)이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해로동혈 偕老同穴
[함께 해/늙을 로/같을 동/구멍 혈]
☞부부가 화목하여,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힘. 부부사이의 화목함.
[출전]
『시경(詩經)』
[내용]
격고(擊鼓)라는 시에,「죽으나 사나 만나나 헤어지나, 그대와 함께 하자 언약하였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겠노라. 즉 전선에 출장한 병사가 고향에 돌아갈 날이 언젤런지...... 애마(愛馬)와도 사별하고 싸움터를 방황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다. 그러나,“아, 멀리 떠나 우리의 언약을 어기다니"로 끝맺은 병사의 슬픈 노래다
[원문]
死生契闊에 與子成說호라, 執子之手하여 與子偕老라 호라
[예문]
▷ 일본에서는 해면을 결혼선물로 주기도 한다. 예쁜 꽃병처럼 생긴 해면에 새우가 들어가 살다가 몸이 커지면 빠져 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같이 해로동혈(偕老同穴)하기 때문이다
. 우리 나라에는 205종의 해산 해면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모든 신혼부부는 백년해로(百年偕老)와 해로동혈(偕老同穴)을 약속하고 꿈꾼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해어지화 解語之花
[풀 해/말씀 어/어조사 지/꽃 화]
☞말을 이해하는 꽃--미인을 뜻하는 말
[출전]『開元天寶遺事』
[내용]
당나라 현종이 비빈,궁녀들을 데리고 연꽃을 구경하다가 양귀비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꽃
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 해옹호구 海翁好鷗
[바다 해/늙은이 옹/좋아할 호/갈매기 구]
☞바다 노인이 갈매기를 좋아한다. 사람에게 야심(野心)이 있으면 새도 그것을 알고 가까이하지 않는다
[출전]『열자(列子)』 황제(黃帝) 편
[내용]
바닷가에 사는 어떤 이가 갈매기를 좋아했다. 그는 매일 아침 바닷가로 나가서 갈매기들과 더불어 놀았는데, 그에게 놀러 오는 갈매기들이 200마리도 넘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더불어 논다는 말을 들었다. 그 갈매기를 잡아 오도록 해라. 내 그걸 가지고 놀고 싶구나." 그는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다음날 역시 바닷가로 나갔다. 그런데 이날 갈매기들은 그 위를 맴돌며 날 뿐 내려오지 않았다.
■ 행불유경 行不由徑
[다닐 행/ 아니 불/ 말미암을 유/ 지름길 경]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고 큰 길을 걷는다는 말로, 정정당당히 일함.
[출전]『論語』
[내용]
공자의 제자 자유(子遊)가 무성(武城)이라는 작은 도시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축하 겸 애제자가 일하는 모습을 보러 간 공자가 그에게 물어 보았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너도 부하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터인데, 이렇다 할 인물이 있느냐?"
"예. 안심하십시오. 성은 담대(澹臺), 이름은 멸명(滅明)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가고,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
.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얻어서 다행이다. 소중히 대하려무나." 공자는 기뻐하며 자유를 격려했다.
■ 행시주육 行尸走肉
[다닐 행/주검 시/달릴 주/고기 육]
☞ 살아 있는 송장,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 배운 것이 없어 쓸모없는 사람 비유
.
[참고]
후목분장 朽木糞墻 : 정신이 썩어 쓸모 없는 사람
[예문]
▷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사람으로부터 정신(精神)과 영혼(靈魂)이 떠나 버리면
행시주육이(行尸走肉耳)라!
그는 더 이상 사람일 수 없고 그저 걸어다니는 시체요 달리는 고깃덩어리와 다름없다는...<책-빛은 동방으로부터>
■ 허유괘표 許由掛瓢
[허락할 허/말미암을 유/걸 괘/표주박 표]
☞속세를 떠나 청렴하게 살아가는 모양
[출전]
『高士傳』
[내용]
허유는 세상을 피하여 箕山(기산)에 숨어 살았다. 그는 욕심이란 티끌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진 것이라고는 입은 옷이 전부였다.
요임금이 다스리던 태평성세때 허유도 배를 주리는 일 없이 물을 마시고 싶으면 시냇가에 나가 손으로 떠 마시면 되었고 자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나무 등걸을 베고 자면 되었다.
하루는 허유가 시냇가에 나가 물을 손으로 떠 마시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아낙네가 딱하게 생각하여 그에게 쪽박하나를 갖으라고 주었다 물을 떠 마시는데는 안성 맞춤이였다.
그런데 비록 작은 쪽박이기는 하나 그것도 하나의 재산이엿다 그래서 늘 빈 손으로 홀가분하게 다니던 그에게는 짐이 되었다, 나무 그루터기를 베고 낮잠을 청할 때도 쪽박을 나무 가지에 걸어 두어야 하고 잠이 들었다가도 바람에 흔들려 달가닥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야하니 예전처럼 단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쪽박없이 살아온 지난 날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는 미련없이 버렸다. 버리고 나니 얼마나 개운한지 몰랏다. 이를 일러 "許由掛瓢(허유가 쪽박을 나무가지에 걸다) " 라하니 즉 세상 물욕에 아랑곳 하지 않는 고결함을 비유한 말이다.
그런 허유에게 요임금으로부터 천자 자리를 주겠노라는 제휴가 들어왔다.요임금은 아들이 어질지 못해 다른 온후한 사람을 물색 중이였다.그때 마침 신하들이 현자라고 이름난 허유를 추천했던 것이다.
허유가 거절하여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청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기산 기슭으로 숨어 버렷다.그러나 요임금은 포기하지 않고 자꾸만 사람을 보내 허유를 설득했다. "천자가 싫다면 九州의 長 이라도 맡아 주시오."
그러나 허유는 그것 마저도 거부하며 냇가로 가서 귀를 씻었다.그때 마침 소보라는 소몰이가 같은 냇가에서 소에게 물을 먹이고 있다가 허유가 귀를 닦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허유가 말했다. "나에겐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소 .그런데 요임금이 자꾸만 졸라서 귀가 더러움을 탔으니 닥아내는 중이요."
소보가 얼굴 빛을 바꾸며 말했다.
"당신이 정말로 요임금의 부탁을 듣고 싶지 않다면 왜 요임금에게 발견될 곳에 있었습니까? 보다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리면 될 것을 .그러면 요임금도 포기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있으면서 요임금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것과, 자기는 그것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명성을 떨치려는 것이 아닙니까?
난 이제까지 당신이 현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명성만 탐내고 있는 속물이군요. 나는 그런 속물이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내 소에게 먹이는 것이 삻소이다." 소보는 소를 끌고 허유가 귀를 씻은 곳 위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
■ 허장성세 虛張聲勢
[빌 허/베풀 장/소리 성/기세 세]
☞비어 있고 과장된 형세로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실력이 없으면서 허세를 부림
[내용]약하지만 강한 것처럼 가장하여 실속은 없으면서 큰소리를 치거나 헛소문과 허세로 떠벌린다는 말이다.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데 과장하여 많다고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호왈백만(號曰百萬) 또는 자기과장(自己誇張)과 비슷한 말이다.
중국의 진(晉)나라 장수인 위주와 선진이 위(魏)나라에 있는 오록성(五鹿城)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선진은 군사들에게 군대 안에서 쓰는 기인 기치(旗幟)를 많이 들고 산이나 언덕을 지나갈 때마다 기를 꽂으라고 하였는데, 숲에는 수없이 많은 기치가 나부꼈다.
위주가 '군사는 적진을 향해 소리없이 쳐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기치를 꽂아 두어 적이 미리 방어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하자, 선진은 '곳곳에 기치를 많이 꽂아서 늘강대국의 침략에 대해 근심하고 있는 약소국가인 위나라 백성들에게 우리 군대에 대한 위압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진나라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위나라 백성들이 성 위에 올라가보니 진나라의 기치가 온 산과 언덕에 셀 수 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위나라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달아났고 오록성의 관리들도 이 백성들을 막을 수 없었다. 진나라 군사가 오록성에 이르자 성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선진은 무사히 오록성을 함락하였다고 한다. <네이버백과>
[예문]
▷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서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이 당선자가 그런 문제에 허장성세를 부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단기적인 인기나 평가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2008.1 뉴스메이커>
▷ 5년의 통치는 자신의 총체적 인격 그 자체다. 대통령은 문민·국민·참여 같은 허장성세의 가면 뒤에 숨어선 안 된다. 가면을 벗고 이름 석 자가 적힌 맨 얼굴로 국민을 대해야 한다.<2008.1 중앙일보>
▷ 자칫 빗나가면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끝난 역대 정권의 패착이 재현될 수 있음을 새 정부는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2007.12 문화일보>
■ 헌훤
獻喧
[바칠 헌/따뜻할 훤]
☞따뜻한 것을 바친다. 남에게 크게 소용이 되지 않는 물건을 바침. 남에게 물건을 줄 때의 겸손한 말
[출전]
『열자(列子) 양주(陽朱) 편』
[내용]
옛날 송나라에 농부가 있었는데, 언제나 해진 무명옷과 삼베옷을 입고서 근근이 거울을 지냈다. 봄이 되어 농사일이 시작되면 스스로 햇볕을 쬐면서 천하에 넓은 집과 따스한 방이나 솜옷과 여우나 담비 갖옷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가 그의 아내를 돌아다 보면서 말하였다. "햇볕을 쪼이면서도 따스함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이것을 임금님께 알려 드리면 상을 많이 내리실 것입니다."
그 마을의 부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옛날 사람 중에 콩나물과 수삼과 미나리와 개구리밥을 맛있다고 생각하고는 고을의 귀한 신분의 사람에게 추어올리며 말하였소.
고을의 귀한 신분의 사람이 그것들을 가져다 맛을 보니 입을 쓰게 만들고 배만 아프게 하였다오. 여러 사람들이 웃고 그를 원망을 하여 그 사람은 크게 부끄러워 하였다오. 당신도 이런 종류의 사람이오." 이렇듯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대단한 것 같지만 남이 보기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 현두자고 懸頭刺股
[매달 현/머리 두/찌를 자/다리 고]
☞머리를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른다. 공부 등 뭔가를 매우 열심히 하는 것, 학업에 전심전력함.
[내용]
. 졸음이나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에 끈을 묶어천장 대들보에 매달고 송곳으로 넓적다 리를 찌른 데서 유래되었다.
한나라의 손경은 낙양에 도착한 후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졸음이 오면 머리를 천장 대들보에 끈으로 매달아 놓고 학업에 매달렸다.
전국 시대 때 소진은 책을 읽다가 졸리면 송곳으로 자신의 넓적 다리를 찔렀다. 피가 흘러 복사뼈까지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동]
추고지면[錐股之勉]
[동]
차형손설[車螢孫雪]
■ 현하지변 懸河之辯
[매달 현/강 하/어조사 지/말잘할 변]
☞흐르는 물과 같은 연설. 매우 유창한 말솜씨.
[동]
懸河口辯/懸河雄辯/구약현하口若懸河]
[출전]『진서』
[내용]입에서 나오는 말이 경사가 급하여 쏜살같이 흐르는 강과 같다는 말로, 말을 거침없이 청산유수처럼 유창하게 엮어 내려감을 비유한 말이다. 《진서(晉書)》〈곽상전(郭象傳)〉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서진(西晉)의 학자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탁월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일상생활 속의 모든 현상에 대한 깊은 사색을 즐겼다. 그는 성인(成人)이 되어서도 노장(老莊)의 학설을 좋아하여 그에 관한 연구와 집필을 계속하였다. 곽상은 그 당시 조정으로부터 관직을 맡아 줄 것을 부탁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학문 연구에 뜻을 두고 있었으므로 모두 사양하였다. 그러나 한번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황문시랑(黃門侍郞)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는 관직생활에 있어서도 매사를 이치에 맞게, 분명하게 처리하였고, 다른 사람들과 어떤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좋아했다. 토론을 할 때마다 그의 말이 논리 정연하고 언변이 뛰어난 것을 지켜보던 왕연(王衍)은 이렇게 칭찬의 말을 했다.
“곽상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마치 산 위에서 곧장 떨어지는 물줄기가 그치지 않음과 같다[聽象語 如懸河瀉水 注而不竭(청상어 여현하사수 주이불갈)].”고 하였다. 여기서 ‘구약현하’라는 말이 나왔으며, 이 말은 ‘현하지변(懸河之辯)’과 유사하다. 이 말들은 말만 번지르르게 하고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두고 말할 때도 있다.<두산백과>
■ 혈혈단신 孑孑單身
[외로울 혈/홀로 단/몸 신]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는 홀몸..
[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