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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호 - 희


■ 호사다마 好事多魔
[좋을 호/일 사/많을 다/마귀 마]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것이 많다.좋은 일에는 흔히 탈이 끼어들기 쉬움,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
[동]호사다방(: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 호몽부장(:좋은 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


[내용]
魔는 磨라고도 쓴다. 이 말이 사용된 예로는 중국 청(淸)나라 때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홍루몽(紅樓夢)》에 "그런 홍진 세상에 즐거운 일들이 있지만 영원히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또 '미중부족 호사다마(美中不足 好事多魔:옥에도 티가 있고, 좋은 일에는 탈도 많다)'라는 여덟 글자는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또 즐거움이 다하고 슬픈 일이 생기며, 사람은 물정에 따라 바뀌지 않는 법이다"라는 구절이 있다.또 금(金)나라 때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라는 구절이 있다. 좋은 일이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몽부장(好夢不長:좋은 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과 같은 의미이다.<네이버백과>

[예문]

호사다마라고
덕산댁은 복남이를 낳고 산후 조리가 잘못되었던지 얼마 후 중풍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 1988년 3월 29일,둘째 아이를 임신했던 그녀는 묘목을 등에 엎고 모래 언덕을 넘어가다가 발을 헛디뎌 언덕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등에 진 나뭇가지가 온몸을 찔러댔다. 그게 사단이 돼 엄마 뱃속에서 9개월간 살았을 뿐 세상 구경도 해보지 못한 아이는 황량한 모래 언덕에 묻혔다.<2006 부산일보--사막에 숲이 있다>



■ 호시탐탐 虎視耽耽
[범 호/볼 시/즐길 탐/즐길 탐]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공격이나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모양. 또는 어떤 일에 대비하여 방심하지 않고 가만히 정세를 관망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출전]
《주역》


[내용]
글자의 뜻으로 보아 '眈眈(탐탐)'이 옳고, '耽耽(탐탐)'은 그 속자(俗子)로 봄이 옳을 듯하다. 《주역》의 육십사괘에 '이()’라는 괘가 있다. '이()’란 아래턱을 가리키는 말로, '기른다'는 의미가 있다. 그 괘형은 두 양(陽)이 상하로 있고, 사음(四陰)이 가운데 끼어 있는 형상으로 마치 사람이 입을 벌린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을 구성하는 팔괘(八卦)의 괘덕(卦德)으로 보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 턱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여 음식으로 사람의 몸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기른다'는 뜻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괘의 효사(爻辭)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전길 호시탐탐 기욕축축 무구(顚吉 虎視耽耽 其欲逐逐 无咎;거꾸로 길러지는 것도 길하다. 호시탐탐하여 그 욕심을 쫓아가면 허물이 없다.)" 이괘는 인간세상의 계급에 비유하면 천자를 보좌하여 천하의 만민을 기르는 대신의 지위에 상당한데, 음유(陰柔)로 힘이 부족하여 혼자의 힘으로는 천하의 만민을 기르기는커녕 자기의 몸을 기르는 일조차도 불안하다. 그러므로 아래 지위에 있는 백성의 도움과 위에 있는 천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위에 있는 사람이 호시탐탐하여, 위엄이 있고 사납지 않은 태도로 정중하게 행동하면 아랫사람도 감히 깔보지 못하고 또한 그를 받들게 될 것이다. 또 사람에게 길러짐을 구할 때는 그 욕심을 따라서 끊임없이 하면 일이 성취되고, 이렇게 하여 이미 위엄을 갖추고 사람에게 길러짐을 구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으면 허물을 얻지 않게 되는 것이다.<네이버백과>>


[예문]

▷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 적들은

호시탐탐
침략의 야욕을 불태웠다.
▷ 일본의 조야(朝野)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현안으로 해서 바다 서쪽을 호시탐탐하고 있었다.≪유주현, 대한 제국≫
▷ 나 사장의 눈길은 쥐덫에 걸린 쥐를 놀려 먹듯이 정 없이 즐겁고

호시탐탐해 보였다
.≪박완서, 오만과 몽상≫



■ 호연지기 浩然之氣
[넓을 호/그럴 연/기운 기]

☞넓고 큰 기운. 공명정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적 용기.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속에서 자연적으로 움직이는 지극히 평화스러우면서도 광명정대한 정기, 거침 없이 넓고 큰 기개, 호기


[출전]
『孟子』 公孫丑篇
[원문]難言也 其爲氣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天地之間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也 是集義之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 則矣.



[내용]
: 맹자가 제(齊)나라에서 제자 공손축(公孫丑)과 나눈 대화다.“선생님이 제의 대신이 되어서 도를 행하신다면 제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覇者-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동심(動心-책임을 느껴 마음을 움직임)하실 것입니다.”“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맹자는 그것을 용(勇)이라 말하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용(大勇)이라 하였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告子-맹자의 논적(論敵-맹자의 성선설 부정)〕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知言〕. 거기에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있다. 지언(知言)이란 피사(?辭-편협한 말), 음사(淫辭-음탕한 말), 사사(邪辭-간사한 말), 둔사(遁辭-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명(明)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며, 기(氣)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 기는 의(義)와 도(道)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예문]

▷ 산수가 뛰어난 곳에서 마음껏 즐기며 호연지기를 기르다.
▷ 아차산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고구려기념관'을 건립하여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호연지기 교육의 장
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2006 뉴시스>



■ 호유기미 狐濡其尾
[여우 호/젖을 유/그 기/꼬리 미]

☞처음에는 쉬워도 나중에는 곤경에 빠짐,준비가 없으면 일을 추진할 수 없음
[출전]
『전국책』
[내용]여우는 머리가 가볍고 꼬리가 무겁기 때문에 꼬리를 얹고 물을 건너는데 중간에 힘이 빠져 고리를 물에 빠뜨리면 익사하거나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속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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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접지몽 胡蝶之夢
[오랑캐 호/나비 접/어조사 지/꿈 몽]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 물아일체의 경지-물아의 구별을 잊음/만물일체의 심경/인생의 덧없음을 비유/꿈.
[동]
莊周之夢
(장주지몽),


[출전]
『莊子』, 齊物篇
[원문]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내용]
장자(莊子)의 만물제동(萬物齊同) 사사에는 우리가 대소(大小), 미추(美醜), 선악(善惡), 시비(是非) 등의 대립되는 가치관에 있어서 그 하나는 좋다 하고 그 하나는 나쁘다고 하는데, 장자는 그것은 우리가 도를 도로써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것일뿐 실제에 있어서는 무차별임을 주장하였다.“꿈 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 통곡하는 수가 있다. 또 꿈 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사냥을 하면서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임을 의식하지 못하여 꿈 속에서 꿈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나 깨어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이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꿈이 현실이 아니고,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예전에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꺼이 날아 다니는 나비였다.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莊周)임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나는 장주가 되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도(道)의 세계에서 보면 만물이 다 제일(第一)하다. 장주도 호접이고 호접도 장주라.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꿈이다.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되었고, 그 자유를 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물(物)의 시비(是非)·선악(善惡)·미추(美醜)·빈부(貧富)·화복(禍福) 등을 구분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物我一體]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하였다. 호접지몽이라는 고사에 이러한 생각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출처 : 한자뱅크



■ 호중천지 壺中天地
[병 호/가운데 중/하늘 천/땅 지]

☞항아리 속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별천지(別天地)·별세계·선경(仙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또는 술에 취하여 세속을 잊어버리는 즐거움이나 장소가 극히 협소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동]
호중지천[壺中之天],일호지천[一壺之天]
[유]
무릉도원[武陵桃源],別天地,선경[仙境],이상향[理想鄕]


[출전]
『後漢書』
[내용]
이 말은 한대(漢代)의 선인(仙人)인 호공(壺公)이 하나의 항아리를 집으로 삼고 술을 즐기며 세속을 잊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호천(壺天)·호중천(壺中天)·호중천지(壺中天地)·일호지천(一壺之天)이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후한 시대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남현(汝南縣)의 시장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비장방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영약(靈藥)을 파는 약장수 할아버지가 한 분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는 언제나 가게 앞에 항아리를 하나 놓아 두고는, 시장이 파하면 얼른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시장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비장방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를 항아리 속으로 안내했다. 항아리 속에는 훌륭한 옥으로 만든 화려한 저택이 장엄하게 솟아 있고, 그 저택 안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고 나서, 다시 항아리 밖으로 나왔다. 이 약장수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유배된 선인(仙人)인 호공이었다. 뒤에 호공이 용서를 받아 천계(天界)로 돌아갈 때, 비장방도 그를 따라갔는데 선술(仙術)을 익히는 데 실패하여 지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비롯하여 ‘호중지천’은 별천지·별세계·선경을 의미하게 되었다. 항아리의 입구가 좁은 데에 연유하여 장소가 극히 협소함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두산백과>




■ 혹세무민 惑世誣民
[미혹될 혹/세상 세/속일 무/백성 민]

☞세상을 미혹되게 하고 백성들을 속이다.


[예문]

절의 형편도 딱하게 되어 다소의 보시를 바라고 왔더니만, 상투 자르고 유학하시는 양반께서 혹세무민의 원흉인 양 몰아세우는 바람에 수모만 당하였소이다.≪박경리, 토지≫

▷ 예수가 바리사이파의 율법적인 전통의 많은 부분을 거부하고(마르 7:1∼23), 사람들을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주어(마태 11:28∼30), 그들에게 율법의 보다 심오한 의미를 가르치고자(마태 5:20∼48), 형식적인 신앙을 통렬히 비난하고(마태 6:1∼18, 23:5∼12), 예수 자신으로부터 구원이 성취되리라고 가르친(마르 10:45) 사실 등은 바리사이파와의 갈등을 불가피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결국은

혹세무민(惑世誣民) 죄목으로 십자가에 처형되는 운명
을 자초하였다. 이 갈등은 예수의 사망 후 초대 교회신도들과 바리사이파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 동학도 서학과 마찬가지로 불온한 사상적 집단이며 민심을 현혹시키는 또 하나의 사교()라고 단정하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863년에는 최제우를 비롯한 2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혹세무민()의 죄로 체포되어
, 최제우는 이듬해 대구에서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혼연일체 渾然一體
[모두 혼/그럴 연/몸 체]

☞사람들의 행동·의지 따위가 조금도 차이가 없이 한 덩어리가 되다.
[예문]

▷ 노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 베르그송에 있어서는 근대 실증 과학의 정신과 철학의 정신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



▷ 지(知)를 대상(對象)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好)는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樂)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好)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樂)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圓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樂)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와 부분, 체(體)와 용(用)이 혼연(渾然)의 일체(一體)를 이룬 어떤 질서(秩序)와 장(場)을 의미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호(好)는 대상을 타자(他者)라는 원천적 비대칭적 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知)와 호(好)를 지양(止揚)한 곳에 낙(樂)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고전강독의 관점에서 이를 규정한다면 “낙(樂)은 관계의 최고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攄得)이 가능한 것이지요.<신영복-성공회대 강의>中에서




■ 혼정신성 昏定晨省
[어두울 혼/정할 정/새벽 신/살필 성]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림-부모를 섬기는 자식의 바른 효행
[준]
定省
[유]
온청정성[溫淸定省]동온하청[冬溫夏淸]조석정성 [朝夕定省]
[출전]『禮記』
[내용]이 말은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곧 효, 또는 효행이다. 이 효사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가장 으뜸되는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즉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공자는 이러한 효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 유교적인 효사상은 맹자에 와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효경(孝經)》에서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명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효사상이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되자 자연히 효에 대한 행동상의 규범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종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먼저 부모를 대하는 얼굴가짐을 중시했다.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겨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하여 ‘색난(色難)’이라 하였다. 또 부모의 잘못을 보면 간언은 하되 뜻은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시면 3년간 부모의 평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저녁에는 잠자리가 어떤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해보고 아침에는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여쭌 다음 부모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폈으니, 이것이 바로 ‘혼정신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기본 도리였던 것이다.

이 말은 겨울에는 따뜻하게[溫] 여름에는시원하게[淸] 해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는 뜻의 '온청정성(溫淸定省)'이란 말과 뜻이 통한다. 또 부모를 섬기기는 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서늘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청(冬溫夏淸)'이라는 말도 모두 《예기》에 나오는 말로서 그 뜻이 서로 통하는 말이다.

[예문]
▷ 노인네가 어려지셔서 자주 남산 밑 첩며느리에게 가 머무시옵는데 혼

정신성이 깍듯하고
….≪한무숙, 이사종의 아내≫

▷ 오윤환(吳潤煥, 1872∼1946) 선생은 속초지역의 이름난 유학자로서, 호는 매곡(梅谷), 자는 성빈(聖斌)이다. 선생은 매일 의관을 정제하고 아침 문안을 올리는 등 조석으로 부모를 돌보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의 효행
을 몸소 실천하셨다.<2006 연합뉴스>



■ 홍로점설 紅爐點雪
[붉을 홍/화로 로/점 점/눈 설]


☞불로 벌겋게 단 화로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는다.사욕이나 의혹,번뇌가 일시에 꺼져 없어짐./도를 깨달아 마음 속이 탁 트여 막힘이 없음/크나큰 일에 적은 힘이 아무런 보람이 없음
[원]홍로상일점설 紅爐上一點雪


[예문]

▷ 아마조나스 오페라극장의 전체적 인상은 거대한 아마존과 싸우 느라고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비단 이 극장뿐만이 아니라 마 나우스는 도시 그 자체가 아미존에 뛰어든 이질적인 틈입자(闖入者)였습니다. 아스팔트는 뜨 겁고 선창의 쇠붙이들은 녹쓸고 있습니다. 마나우스는 비록 그 규모가 150평방km에 달하는 큰 도시이지만 7백만 평방km의
광활한 아마존 유역에 비교해 보면 그것은 실로 홍로점설 (紅爐點雪)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아마존과 싸우고 있는 마나우스와 아마존과 더불어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은 너무나 선명 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신영복 해외기행 <녹색의 희망 아마존>에서

▷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
이요,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본분종사 전제차구 여목인창박 홍로점설 역여석화전광 학자실불가의의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 래하고 불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 이듯 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원불교, 선가귀감(禪家龜鑑)중에서>

우는 상호가 눈앞에 보이기까지 하면 오주의 먹은 맘은 홍로점설같이 사라지고 미친 맘이 왈칵 내뛰었다.≪홍명희, 임꺽정≫

[참고]
'붉은 화로 위의 한조각 눈'은 마치 무상하고 덧없음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선의 입장에서는 아주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화로를 불심, 불성에, 눈은 번뇌망상에 각각 비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열하게 타고 있는 화로 위에 한조각 눈을 놓으면 즉시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갖춰진 불심, 불성의 달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면 어떤 망상이나 분별심이 나타난다해도 순식간에 사라져 자취마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화로와 같은 불심 앞에서는 한 점의 미망도 남김없이 태워져서 정무구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빛난다. 망상이 남김없이 소진돼 약간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자취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철저하게 대오한 사람의 무애자재한 실천 수행을 가리킨다. 이 '자취를 없애는'것은 본래 갖춰져 있는 불성이 미망의 구름에 덮여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태워버릴 수 있는 열화같은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 '붉은 화로 위의 한조각 눈'에 대한 두 선사의 일화가 있다.
문 : 흰 칼날이 죽이려고 할 때 한구절을 말하라.
답 :

붉은 화로 위에 한조각 눈이다
.
문 : 눈이 녹고 난 뒤에는 어떠한가?
답 : 비, 눈, 안개, 얼음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녹으면 한가지로 계곡의 물이다.
이 문답에서는 일체를 융화하는 고차원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碧巖錄>




■ 홍일점 紅一點
[붉을 홍/한 일/점 점]

☞ 여럿 가운데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하나뿐인 여자. 여러 하찮은 것 가운데 단 하나 우수한 것.
[출전]



≪唐宋八家文≫ 〈王安石 詠石榴詩〉


[내용]
온통 새파란 덤불 속에 핀 붉은 꽃 한 송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색깔은 굳이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萬綠叢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

온통 새파랗기만 한 푸른 잎 속에 한 송이 붉은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색깔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바로 이런 감동이다. 여러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 있는 것보다는 무성한 푸른 잎 사이로 어쩌다 피어 있는 한 송이 빨간 석류가 훨씬 사람의 눈과 마음을 끈다. 이와 같이 만록총중홍일점이란, 여성들의 사회 생활에 제약이 많았던 시절에 많은 남성들 사이에 홀로 끼여 있는 여성을 나뭇잎 속에 파묻혀 있는 꽃에 비유한 것이다. 이 시기에 남성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던 것은 주로 기생들이었으니, 여기서 가리키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여러 남성 사이에 혼자 섞인 여성을 두루 가리킨다.<두산백과>


[원문]
萬綠叢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



■ 화광동진 和光同塵
[화할 화/빛 광/같을 동/티끌 진]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같이 함.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속세의 사람들과 어울려 동화함
.



[출전]『노자(老子)』
[내용]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知者不言(지자불언)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言者不知(언자부지)
그 통하는 구멍을 막아 塞其兌(새기태)
그 문을 닫고 閉其門(폐기문)
그 날카로움을 꺾고 挫其銳(좌기예)
그 얽힘을 풀고 解其紛(해기분)
그 빛을 부드럽게 하여 和其光(화기광)
그 속세의 먼지와 함께 하니 同其塵(동기진)
이것을 현동(玄同)이라 한다. 是謂玄同(시위현동)




■ 화룡점정 畵龍點睛
[그릴 화/용 룡/점찍을 점/눈알 정]


☞무슨 일을 하는데 최후의 중요한 부분을 완성함.[북한어]글을 짓거나 일을 하는 데서 가장 요긴한 어느 한 대목을 잘함으로써 전체가 생동하게 살아나거나 활기 있게 됨, 한편 어떤 일이 총체적으로는 잘 되었는데 어딘가 한군데 부족한 점이 있을 때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고도 한다.

[출전]『水衡記』
[내용]:「唐나라 때 장승요란 사람이 금릉 안락사에 두 마리 용을 그려 놓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매양 말하기를“눈동자를 그려서 넣으면 곧 날아서 가리라.”하니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니 잠깐 사이에 우뢰가 일고 번개가 나더니 벽이 쪼개지면서 한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고 한 마리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대로 있더라.

[원문]張僧繇가 於金陵安樂寺에 畵兩龍호대 不點睛하고 每云‘點之면 卽飛去라’하더니 人이 以爲妄이어늘 因點其一하니 須臾에 雷電破壁하여 一龍이 上天하고 一龍 不點眼者는 見在하니라. ** 繇(우거질 요) 畵(그림 화) 睛(눈동자 정) 雷(우뢰 뢰) 電(번개 전) 壁(벽 벽)




■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꽃 화/없을 무/열 십/날 일/붉을 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한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함,권력은 오래가지 못함
[유]
권불십년[權不十年],세무십년과[勢無十年過]
[내용]
人無十日好(인무십일호)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인데 月滿卽虧(월만즉휴)이니 權不十年(권불십년) 이니라.
사람의 좋은일은 10일을 넘지 못화고 붉은꽃의 아름다움도 10일을 넘지 못하는데, 달도 차면 기우니 권력이 좋다한들 10년을 넘지 못하느니라..

[예문]
▷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노래가락 차차차>

▷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 없다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주장하는 놀자주의의 근거도 바로 이 화무십일홍에 있었다. 살갗 팽팽하고 뺨에 핏기 곱게 돌 때 놀아도 재미있지 꽃지고 나서 해외여행 효도관광 정강이 시리도록 돌아다녀봤자 무슨 즐거움이겠느냐고 청승스런 그 노래는 우릴 설득했다. 더럽고 아니꼽고 무섭고 괴로운 무엇을 보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에 화무십일홍이여
.세월 질겅질겅 씹어먹고 있노라면 넌 곧 지는 꽃이여.너 지고 나 필 때 한번 보자 이 말이여...<화무십일홍에 관한 단상> 中에서

▷ 인간사가 존재하는 한 드라마는 존재한다. 그리고 드라마도 생명체처럼 자라나기도 스러지기도 한다. 드라마의 인기도 생명수가 있을 때 활짝 꽃 피우게 된다. 방송사 역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언제까지 ‘드라마 왕국’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주간한국>



■ 화사첨족 畵蛇添足
[그릴 화/뱀 사/더할 첨/발 족]

☞뱀을 그리고 발을 더한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
[동]
蛇足(사족). /牀上安牀(상상안상) : 마루 위에 마루를 놓는다.
[속담]
고깔 뒤에 군헝겊. /뱀 발을 덧붙인다.

[출전] 『戰國策』
[내용] :「楚나라에 제사를 맡은 사람이 그 하인들에게 큰 잔에 담긴 술을 주거늘, 하인들이 서로 말하되“여러 사람이 이를 마시면 만족하지 못하고 한 사람이 마시면 조금 과하니 청컨데 땅에다가 그려서 뱀을 만들되 먼저 이룬 사람이 술을 마시기로 하자.”하였다.

한 사람이 뱀을 먼저 이루어 놓고 막 이를 마시려고 할 때,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땅에 그리며 말하기를“내가 능히 그렸으나 발이 아직 발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도다.”그 때 바로 한 사람이 뱀을 완성하고, 그 술잔을 빼앗아 말하되“뱀은 진실로 발이 없거늘 그대는 어찌 뱀의 발을 그릴 수 있겠는가?”하고 마침내 술을 마시니 뱀의 발을 만든 사람은 마침내 그 술을 마시지 못하였다.

[원문] 楚有祠者하여 賜其舍人?酒하니 舍人이 相謂曰“數人이 飮之면 不足이요 一人이 飮之면 有餘하니 請畵地爲蛇하여 先成者가 飮酒하리라”一人이 蛇先成하여 引酒且飮之할새 乃左手로 持?하고 右手로 畵地曰“吾能爲之나 足未成이로다.”一人之蛇가 成하야 奪其?曰“蛇固無足이라 子安能爲之足이리요”遂飮其酒하니 爲蛇足者는 終亡其酒러라.**引 당길 인/奪 빼앗을 탈/固 진실로 고/安 어찌 안/遂 드디어 수


[예문]

▷ 사족을 달다
▷ 사족을 붙이다
▷ 이런 것이 그녀의 자존심의 소산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그런 것도 쓸데없는

사족처럼 느껴져
, 내 편에서도 아예 염두에 두지 않기로 하였다.≪이호철, 소시민≫



■ 화서지몽 華胥之夢
[빛날 화/서로 서/어조사 지/꿈 몽]

☞화서의 꿈. 좋은 꿈이나 낮잠
[유]
화서지국(華胥之國), 유화서지국(遊華胥之國)


[출전]
列子』 黃帝篇
[내용]
먼 옛날 중국 최초의 성천자(聖天子)로 알려진 황제(黃帝:공손헌원 公孫軒轅) 는 어느날, 낮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놀러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향(理想鄕)을 보았다.
그 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愛憎)도 이해(利害)의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했다. 또 물 속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죽지 않으며, 공중에서 잠을 자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과 같고 걸어도 땅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또한 사물의 미추(美醜)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험준한 산골짜기도 보행을 어렵게 하지 않았다. 형체를 초월한 자연 그대로의 자유로 충만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번뜩 깨닫는 바 있어 중신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꿈 이 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짐(朕)은 지난 석 달 동안 방안에 들어앉아 심신 수양에 전념하며 사물을 다스리는 법 을 터득하려 했으나 끝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오. 그런데 짐은 이번 꿈 속에서 비로소 그 도(道)라는 것을 터득한 듯싶소." 그 후 황제(黃帝)가 '도(道)'의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원문]
華胥氏之國 在?州之西 臺州之北 不知斯齊國幾千萬里蓋非舟車足力之所及 神遊而已 其國 無師長 自然而已 其民無嗜欲 自然而已 不知樂生不知惡死 故無夭敵 不知親己 不知疏物 故 無愛憎 不知背逆 不知向順 故無利害都無所愛惜 都無所畏忌 入水不溺 入火不熱 斫撻無傷 痛 指?無?榻 乘空如履實寢虛若處牀 雲霧不?其視 雷霆不亂其聽 美惡不滑其心 山谷不? 其步 神行而已.



■ 화씨지벽 和氏之璧
[화할 화/성 씨/어조사 지/구슬 벽]

☞천하 명옥(天下名玉)의 이름. 어떤 난관도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 [유] 완벽(完璧). 연성지벽(連城之璧)

[출전] 『韓非子』 〈卞和〉

[내용]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 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한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월형( 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울었다. 문왕이 그 까닭을 묻고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이라 명명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렸다.




■ 화조월석 花朝月夕
[꽃 화/아침 조/달 월/저녁 석]

.☞꽃피는 아침과 달뜨는 저녁.--경치가 좋은 때
**음력 2월15일--화조/음력 8월15일--월석


[예문]
.

화조월석 좋은 때
나 추야장 긴긴밤에 외롭고 구슬퍼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박종화, 금삼의 피≫

▷ 일년삼백육십오일은 춘하추동 사시절인데

꽃피고 잎이피면 화조월석(花朝月夕) 춘절(春節)이요
. 사월남풍 대맥황(大麥黃)은 녹음방초 하절(夏節)이라 금풍(金風)이 소슬하여 사벽충성(四壁蟲聲) 슬피울면 구추단풍(九秋丹楓) 추절(秋節)이요 백설이 분분하여 천산(千山)에 조비절(鳥飛絶)이오.만경(萬頃)에 인종멸(人踪滅)하면 창송녹죽(蒼松綠竹) 동절(冬節)이라 인간칠십 고래희요 무정세월 약류파(若流波)라 사시풍경(四時風景) 좋은 시절 아니 놀고어이하리.얼시구 좋다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창부타령≫



■ 화종구생 禍從口生
[재앙 화/따를 종/입 구/날 생]

☞화는 입으로부터 생긴다.말을 조심하라 *從=~로부터
[동]
禍從口出 / 구시화문口是禍門, 病從口入 禍從口出
[출전]
『택씨요람』



■ 화중지병 畵中之餠
[그림 화/가운 데 중/어조사 지/떡 병]


☞그림의 떡. 아무리 욕심이 나도 차지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 형체는 쓸모 없는 것..


[참고]
날개 부러진 매. 나무 거울이라. ◆추풍선(秋風扇).--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못쓰게 된 물건을 이름


[예문]

▷ 또 설사 그 사람도 너를 그렇게 생각한다기로 오늘날 우리 처지로서는
화중지병이지 무슨 소용 있겠니
.≪이기영, 신개지≫

▷ 값싼 한국외평채, 국내은행엔

그림의 떡
--국내 은행들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가격이 폭락한 외평채를 매입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감독원 규정이 대폭 강화돼 투자부적격 등급 의 국가와 금융기관에서 발행한 유가증권은 매입하지 못하도록 명시 해 놓았기 때문.<디지틀 조선>

▷ 현대의 각박한 생존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문화예술은 자칫

화중지병(畵中之餠)과 같은 사치
로 보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침체된 삶의 활력소 때로는 무미건조한 일상의 청량제와 같은 문화의 '보이지 손'의 역할과 잠재적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매일경제]

▷ 국정의 최고책임자로부터 국민 한사람에 이르기까지 비장한 각오로 지혜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세계속의 선진산업사회 건설은 우리에게 영영

화중지병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경제]



■ 화촉 華燭
[빛날 화/촛불 촉]

☞결혼을 상징하는 붉은 색 양초
.

[내용]
화(華)는 가지에 피어 있는 예쁜 꽃의 모습으로, 본디 뜻은 꽃이다. 그래서 '화려하다' '빛나다'라는 뜻도 가지게 되어 화려(華麗) ·화사(華奢) ·부귀 영화(富貴榮華) ·호화(豪華)라는 말이 있다.
촉(燭)은 화(火)와 촉(蜀)의 결합인데, 촉(蜀)은 해바라기 벌레를 말한다. 변색(變色)에 뛰어나 판단을 흐리게 하므로 물(水)을 흐리게 하는 것이 촉 (濁)이고, 기어가는 모습이 뿔(角)을 쳐들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촉(觸 뿔로 들어 받을 촉)자가 나왔다.
또 욕심이 많아 혼자 먹는다 하여 짐승을 뜻하는 견(犬)자를 덧붙여 독(獨)자를 만들었는데, 본디 승냥이같이 생긴 일종의 '야생(野生) 개'를 뜻한다. 촉(燭)은 촉(蜀)처럼 갉아먹듯이 하면서 불(火)을 밝힌다는 뜻으로 '초'나 '촛불'을 의미한다. 燭光(촉광)· 燭臺(촉대)· 燭數(촉수)· 雙燭(쌍촉)이 있다.
따라서 화촉(華燭)이라면 '화려한 촛불'로 붉은 색의 초를 뜻하는데, 중국에서는 육조시대(六朝時代)부터 결혼식과 같은 경사스런 날에 화촉(華燭) 을 사용했다.붉은 초에 흰 불이 타들어 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화촉(華燭)이라면 '결혼(結婚)'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화촉(華燭)을 밝혔다'는 표현을 접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화촉(華燭)은 결혼 의식에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첫날밤을 지내는 신혼방에서도 사용했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화촉동방(華燭洞房)이다. 곧 신혼방(洞房)에 화촉(華燭)을 밝혀 놓고 첫날밤을 보낸다는 뜻이다
[참고]
--->>

화촉동방 첫날밤에


부끄럼도 가이없고
시고야 흐르는물에
남산밑에 배를밀어
화촉에 불밝혀라
오중에 신발준비
밤은점점 깊어오고
우리야정도 깊어온다
밤중밤중 야밤중에
눈을감고 누웠으니
창밖엔 말달리는소리
정든님 소릴란가
버선발로 뛰어가서
정든님손목을 덥썩쥐니
들어가오 들어가오
나자는 별당으로 들어가오
한이불 병풍삼고
원앙침 둘이배고
두리둥실 누웠으니
어사야 별당이 여기로구나
[예문]

.
▷ 양가 부모가 화촉에 불을 붙였다.
▷ 부모님은 너무 가난해서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화촉을 밝히셨습니다.




■ 화호유구 畵虎類狗
[그릴 화/호랑이 호/무리 류/개 구]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 비슷하게 됨. 소양이 없는 사람이 호걸의 풍도를 모방하다가 경박한 사람이 됨. ≒ 화호불성 [畵虎不成]



■ 확금자불견인 攫金者不見人
[움켜쥘 확/쇠 금/놈 자/아니 불/볼 견/사람 인]

☞돈을 움켜쥐려는 자에게는 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한다, 물욕에 가리우면 의리나 염치를 모르는 것을 뜻한다.

[출전]『열자(列子)』설부(說符) 편


[내용]
옛날 제나라 사람 중에 금을 탐내는 사람이 있었다. 이른 아침 옷을 입고 시장에 가서 금을 파는 곳을 찾아가 그곳의 금을 훔쳐가지고 갔다. 관리가 그를 체포한 다음 그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있었는데 그대가 남의 금을 훔쳐간 것은 어째서인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금을 가지고 갈 적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목적만을 성취하려다 보면, 주위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해지기 쉽다. 따라서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도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한다.



■ 환골탈태 換骨奪胎
[바꿀 환/뼈 골/빼앗을 탈/아이 밸 태]

☞뼈를 바꾸고 태를 빼앗는다는 뜻,남의 시나 문장의 취의(趣意)를 따서 어구(형식)만을 바꾸어 더 잘되게 自作처럼 꾸밈/ 사람이 변하여 (용모가 환하고 아름다워) 전혀 딴 사람처럼 됨=脫胎,換脫,換骨

[출전]『冷齋夜話』냉재야화--宋, 惠洪

[내용]“황산곡( :본명 )이 말하기를 시의 뜻은 무궁한데 사람의 재주는 한이 있다. 한이 있는 재주로 무궁한 뜻을 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뜻을 바꾸지 않고 그 말을 만드는 것을 가리켜 환골법()이라 하고 그 뜻을 본받아 형용()하는 것을 가리켜 탈태법()이라 한다.”

원래 이 말은 선가()에서 연단법()에 의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황정견이 이것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백과>


[예문]

▷ 약속을 밥먹듯 어기는 언론을 어느 취재원이 신뢰하고 정보를 제공하겠는가? 엠바고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기자실 문화 역시
환골탈태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공개적, 전향적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우리는 본다<기자협회보>

▷ 난곡에는 앞으로 경전철(GRT·난향초교~난곡사거리~신대방역·3㎞, 2008년 완공 예정)이 놓이고, 신림6·10동에는 뉴타운(16만3000평)도 추진되고 있다. 심제천 문화공보팀장은 “여기에다 도림천 생태하천 복원사업까지 마무리되면 그야말로

환골탈태하게 될 것
”이라며 “이런저런 이유에서 봉천동·신림동 이름을 바꾸자는 논의는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고 말했다.<조선 2006>
▷ 심 대표는 그동안 '대선 패배의 원인은 민노당이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 '친북 정당'으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며
당을 환골탈태시키기 위해서는
다수파인 자주파(NL파)의 대북 편향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08.2 중앙일보>



■ 환과고독 鰥寡孤獨
[홀아비 환/과부과/고아 고/홀로 독]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곤궁하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
[동]
四窮(사궁)[출전]『맹자』



■ 황견유부 黃絹幼婦
[누를 황/비단 견/어릴 유/지어미 부]

☞절묘[絶妙]라는 뜻의 은어
[유]
有知無知三十里
[출전]
『世說新話(세설신화)』

[내용]

삼국지(三國志)를 보면 무수한 영웅들이 나온다. 그중에 조조(曹操, 155~220)의 휘하에 양수라는 재능많은 주부(主簿)라는 직책의 관리가 있었다.

채옹(蔡邕, 132~192)의 딸 채염(蔡琰)이 거주하던 남전(藍田)에 있는 조아(曹娥)의 비문에는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薺臼)라는 글귀가 적혀있어 조조가 한중(漢中) 출병 도중에 여기 들렀다가 그 의미를 알고자 한동안 노력하였으나, 아무도 그 의미를 몰라 하는데 양수가 그 비문을 해석하였다.

황견(黃絹)이란 누런 누에고치 옷감을 뜻하는 것이니 곧 색실(絲色)을 뜻하니, 두자를 합치면 절(絶)이 되고, 유부(幼婦)는 어린 소녀를 뜻하니, 어린 소녀(幼婦) 곧 젊은 여인(少女)이니, 두 자를 합치면 묘(妙)가 된다.

외손(外孫)은 딸의 자식으로 딸은 여(女), 아들은 자(子)니, 두 자를 합치면 호(好)가 되고, 제구(題臼)는 다섯가지 맛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이는 매운 것(辛)을 담는 것이니(受), 두자를 합치면 사(辭)가 되므로 모두 조합하니 아주 훌륭한 문장'(絶妙好辭)이라고 해석하였다.



[해설]

이 여덟자는 후한의 채옹이 한단순이 지은 조아의 비문을 칭송한 수수께끼같은 은어인데 조조가 그 뜻을 몰라 양수에게 물으니 안다고 대답했다. 30리를 걸어간 후 조조가 '이제 알았다'하며 그 뜻을 양수에게 설명하자 두 사람의 해석이 서로 일치했다



■ 회계지치 會稽之恥
[모일 회/생각할 계/어조사 지/부끄러울 치]

☞뼈에 사무쳐 잊을 수 없는 패전의 치욕./회계산(會稽山)의 치욕을 씻음
[동]
와신상담[臥薪嘗膽]/절치액완(切齒扼腕).


[출전]
『史記』
[내용]

[오의 발전과 초나라와 전쟁] 오나라는 수몽왕 이전까지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역사에 기록도 거의 없다. 다만 중국의 천자(周)와 동족인데, 그 백성은 남쪽의 만족으로 중원에서 보면 오랑캐 였고 초나라에 복속하고 있었다. 문명의 변방에 있던 오나라가 강대국인 초나라에게 이반하기 시작한 것은 수몽왕 때인데, 수몽 즉위 2년(BC 584년)에 초나라 대신 무신(巫臣)이 오나라를 방문하면서였다.

무신은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하희(夏姬)라는 희대의 요부에 반해 晉나라로 망명 가 진을 위해 초나라를 배후에서 견제하고자 오나라에 사자로 와서 아예 아들까지 연락관으로 남겨두고 오나라를 훈련시켜 군사강국으로 만들어 오나라를 부추켰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오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에 복속해 있던 이민족을 하나 둘 복속시켜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

이 때부터 오나라와 초나라는 적대관계가 되었고 요 왕때 변방 시골에서 뽕나무를 둘러싸고 양국 처녀들의 싸움이 국가간의 전쟁으로 확대되어 공자 光(후에 합려) 이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 땅 두 성읍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후 양국은 적대관계를 넘어 원수관계로 발전되었다.

그 후 오왕 여제 3년(BC 545년)에 제나라 재상이었던 경봉(慶封)이란 자가 오나라로 망명하였고, 합려 왕 때에는 초나라 관리였던 오자서 망명했고 손무를 중용하여 오나라 군대는 정비되고 개혁되어 중원을 넘보게 될 정도로 성장하였다.「춘추좌씨전에는 합려의 조부인 수몽시대(BC 585~561)부터 50년 동안에 오와 초가 10여 차레의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 후 오초는 늘 전쟁상태에 있었으며,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전략에 따라 초를 공격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초토화시켜 초왕이 피란가는 위기에 처하자 초나라 대신 신포서가 秦에 구원하여 진나라 군사가 초군과 합세하여 역공을 개시, 전세는 바뀌어 오나라는 수세에 몰려 오자서도 대패하였으며, 이 와중에 합려의 동생인 부개가 전쟁 도중 본국으로 돌아와 자립을 선언, 스스로 왕이 되었다.

[오월싸움의 시작] 이러한 형국에서 오나라 國元땅에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오가 초나라 수도를 점령한 이듬해 오나라 남쪽에 있던 월나라 왕 윤상(允常)이 느닷없이 오나라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오나라는 전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 정벌에 나섰기 때문에 완전히 허를 찔린 형국이었다. 월나라가 합려가 대궐을 비운 사이 오나라 남쪽 절강(浙江)유역의 취리(聚里)에 난입하여 인근을 쑥밭으로 만들고 스스로 자기 땅으로 편입시켜 버린 것이다.

원래 월나라는 역사에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초기에는 미개하고 오랑캐로 취급 받아 왔으며 오나라의 속국으로 해마다 합려를 위해 공물을 보내오고 왕족이 오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형편이었다. 합려가 왕이 되기 위해 자객 전제 를 이용해 오왕 요를 죽일 때 사용한 칼 어장검(魚腸劍)도 윤상이 진상한 것이다.
합려로서는 그런 월나라가 오나라에 침입한 것이 분통이 터질 일이었으나, 월나라 입장에서 보면 전혀 괴이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에 합려는 초나라와의 몇 번의 싸움에 월나라에 출병을 명령한 바 있으나 월왕 윤상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따르지 않자, 합려는 이것을 응징하기 위해 3만의 군사를 보내 월나라 땅 취리를 빼앗고 절강 지역을 오나라 영토로 편입해 버렸다.
이에 월왕 윤상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중, 오나라가 초나라와 진나라의 공격에 패하자 이를 틈타 오나라를 기습하여 빼앗긴 것을 되찾겠다고 하니 잘못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만큼 월나라는 국력이 그동안 크게 발전해 가 있었고 그 뒤에 벌어질 사태에 대해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오나라는 국내외 사정이 급박해 월나라에까지 손쓸 겨를이 없었고, 월나라도 절강유역을 잠식한 후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아 잠정적으로 두 나라는 잠잠한 상태가 되었다.

[이상한 싸움] 진초연합국에 패하여 초나라 수도에서 퇴각한 이듬해,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초나라 공격을 명하여 회수를 거슬러 번양(繁陽: 하남성 신채현 북쪽)에서 초나라 육상부대를 격파하였다. 초나라가 두려워 수도를 북쪽의 약(호북성 의현성 남쪽)지역으로 옮길 정도였다.

그 후 합려는 10여 년 간 국력을 키워가며 재기를 노렸다. 마침 월나라는 윤상이 죽고 아들 구천이 계승하자, 합려는 기회다 싶어 기원전 496년에 월나라를 치기 위해 군대를 지금의 항주시 동쪽 취리에 진을 쳤다.과거 월왕 윤상시절에 빼앗겼던 절강 유역의 영토가 아직 미결로 남아 있는 것을 기화로, 새 왕으로 등극한 구천에게 이의 시정을 요구한다는 것이 싸움의 동기였다.

그런데 이 싸움은 처음부터 이상한 전쟁이었다.양군이 절강너머 취리 산악지대에 대치하고 있는데, 이상한 일로부터 결전이 벌어졌던 것이다.이 이야기는 좌씨전과 사기세가에 자세히 적혀 있다.

며칠 동안 대치되던 어느날, 월나라 진영에서 구천이 자국 죄인을 3개조로 나누어 각 조마다 목에 검을 갖다 대게 하고 오나라 군대 앞으로 나아가서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게 하였다.

「우리들은 양국이 사우는 이 곳에서 군령을 어겨 죄를 지었다. 이에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으로 속죄하겠노라」

이렇게 외치고 스스로 자신의 목에 칼을 대어 베어 버렸다. 잠시 후에 또 다른 조가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여 죽어갔다. 오나라 병사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월나라 군사들이 공격해와 오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할 수 있었다.월나라 대부 영고부가 합려를 향해 달려들어 합려의 엄지 발가락에 상처를 입히고 신발 한 짝을 빼앗았다. 이후 퇴각하던 합려는 취리에서 약 3km 되는 곳에 있는 형땅에서 발가락 상처가 심해 세상을 떠났다.

합려가 죽기 전 부차를 불러 기필코 복수를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중원의 맹주로 자처하며 일세를 풍미했던 호걸 합려가 그렇게 허무하게 간 것이다.합려의 시신은 곧 도성으로 운구되고 그의 무덤은 도성의 창문박에 자리 잡았는데,「오월춘추」에 따르면 이 문은 초나라 쪽을 향해 지어졌다고 한다.

부차는 왕으로 즉위하자 마자 사람을 마당에 세워두고 자신이 들고 날 때마다 외치게 하여 복수의 일념을 한시라도 잊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하며 잠도 마굿간 같은 곳에서 섶을 베고 자면서 칼날을 갈고 있었다. 이것이 와신상담의 시작이었다.

[구천의 항복] 오왕 부차는 밤낮으로 병사들을 훈련시켜 월나라를 향항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기원 전 494년, 합려가 죽은 지 삼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범려는 기선을 제압하고자 측근 범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선제공격을 감행하였다. 오나라는 월나라 군대를 부초라는 곳에서 격퇴하고, 구천은 패잔병 5천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들어가자 부차가 이를 포위해 버렸다.

구천은 범려의 계책에 따라 대부 種을 파견하여 화친을 요청하고 스스로 신하가 될 것을 맹세 하였으나 오자서의 반대로 무산되자, 대부 종은 오나라 대부 백비에게 뇌물을 주어 결국 부차는 구천을 용서하고 화친하였다.이 때 오자서는 다음과 같이 내뱉었다고 한다.「월나라가 앞으로 10년 동안 백성을 늘리고 재산을 불려서 다시 10년 동안 백성들을 가르쳐 깨우친다면, 20년 후에 오나라는 수렁에 빠질 것이다.」


[구천의 복수준비] 오나라에 도착한 구천 일행은 석실에 끌려가 말 사육하는 일을 하며 수모를 겪었으나 구천은 성실히 하여 부차의 눈에 들게 하여 마침내 귀국을 허락받고 돌아와 재기를 다졌다.사기 월세가에 따르면 구천은 언제나 자신의 옆에 肝을 달아 놓고 눕거나 앉을 때마다 그것을 보며 쓰라린 굴욕의 날들을 상기하며 복수를 맹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할 때마다 간을 핥으며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너는 회계에서의 치욕을 잊었느냐?」
여기서 회계지치(會稽之恥)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오월춘추에 의하면, 구천은 간을 핥는 일 뿐만 아니라 장작위에서 자면서 복수를 맹세 하였다고 한다. 와신상담이라는 고사가 여기서 나왔는데,「십팔사략」에는 부차가 와신(臥薪) 하였다고 하여 와신상담의 주인공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부차와 구천이 복수를 위해 와신과 상담을 하며 절치부심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구천은 스스로 경작을 하였으며, 부인은 베를 짜고 식사때에도 육식을 하지 않았으며, 가나한 자를 돕고 백성들과 고학을 같이하며 재기를 다졌다고 한다. 구천은 이렇게 행동하면서 국정을 신임하는 측근들에게 맡겼는데, 월나라를 승리로 이끌게 한 중요 측근으로 범려와 대부 종,그리고 계연(計然)을 들 수 있다.

[오자서의 죽음] 오왕 부차는 월나를 제압한 뒤 관심을 중원 지역으로 돌려 陳나라를 공격하였고 채나라를 복속시켰다. 그 후 오나라는 제나라 도공(悼公)이 노나라와의 결혼문제로 분쟁이 생겨 오나라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노나라 정벌을 제안하였다가 결혼문제가 해결되자 다시 오나라에 노나라 출병은 없었던 것으로 취소하자 부차는 제나라가 오나라를 무시하는 것이라 하여 기원전 484년 노나라,주나라,담나라군과 연합하여 강대국인 제나라에 출병하였으나 마침 제나라 도공이 권력을 쥐고 있던 가신 田氏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주춤하였다.

그해 가을 다시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려 하자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로 선물을 보내오면서 오나라를 돕겠다는 뜻을 전해왔다.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간언하였으나 구천에게 선물을 받은 백비가 부차를 설득하여 구천을 신임함으로서 구천은 의심받지 않고 오나라를 향한 복수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오자서를 미워하는 부차는 백비로부터 오자서가 아들을 적국인 제나라 대부에게 맡겼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오자서에게 검을 내려 자살을 명하였다.

[월나라의 공격] 기원 전 482년 여름, 부차는 황지에서 周나라, 노나라, 晉나라 제후를 참석시킨 가운데 회맹하였다. 한참 패자를 결정하는 맹약 의식을 준비하던 중, 복수를 벼르던 월왕 구천이 느닷없이 오나라 수도를 공격하였다. 오나라는 크게 패배하여 구천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어 화목을 도모하였다.그러나 오나라의 국력은 급속하게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2년 후(기원전 480년)에는 지금까지 조용하던 초나라 군대가 오나라를 공격하여 오나라를 격퇴시켜 오나라의 국력은 차츰 소진되어가고 있었으나, 이에 반해 월나라는 국정에 힘을 쏟아 차근차근 국력을 축적하였다.

[오나라의 멸망] 구천은 신 땅에서 오나라 군대가 초나라 군대에 패한 이듬 해에 국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오나라를 공격하였다.오왕 부차는 수도 남쪽에 있는 호수인 입택에서 월나라 군대를 맞아 호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예상치 못한 월의 공격으로 오나라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패주하였고, 구천은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고 그대로 퇴각하였다. 이 모두가 범려의 계책에 따른 것이다.

그 후 3년 뒤, 구천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의 수도를 포위하였다. 이러기를 3 년, 결국 견디다 못한 부차는 수치를 무릅쓰고 월나라에 화의를 요청하였다. 회계에서 있었던 화의와 같은 조건으로 이번 화의도 체결되기를 간청하였다. 회계에서는 오자서의 만류를 듣지 아니하고 부차가 화의를 받아 주었으나, 이번 화의에서는 범려가 반대하는 것을 수긍하여 화의는 받아들이질 않았다.

결국 부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죽기 전 죽어서도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하여 얼굴에 보자기를 씌어 달라 했다고 한다. 백비는 불충한 자로 구천에게 주살당하였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으나 「좌씨전」은 월나라에 출사하였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구천이 패업을 달성하자 월나라 재흥과 오나라 멸망에 큰 공을 세운 범려는 갑자기 구천에게 작별을 청하였다. 범려는 오왕 부차가 패업을 이룬 후 측근인 오자서를 가차없이 제거한 일을 뇌리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구천의 인상은 목이 길고 무척이나 새카만 얼굴색이었다고 한다. 여기다 눈꼬리가 위로 쭉 치켜 올라가고 눈썹은 다른 사람보다 흐린 편이었다고 한다.사기에 따르면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보통 불우한 시절에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지만, 나중에 성공해서 번영을 이루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범려는 구천의 인상을 보고 오자서의 운명을 생각했던 것이다.
범려는 구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나라로 건너가 많은 재물을 모아 주위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일본 에무라 하루키(江村治樹)교수의 『와신상담의 오월전쟁』>


[주(註)]
어장검(魚腸劍) --월나라의 구자야는 신의 경지에 오른 명공이었다. 명검을 만드는 솜씨는 중원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월나라 왕 윤상은 오나라에서 실질적으로 권세를 쥐고 있는 공자 光에게 선물할 보검 다섯자루를 구자야에게 만들게 하여 그 중 세 자루를 공자 광에게 보냈다.공자 광은 그 중 가장 우수한 검을 담로(澹盧)라 이름 붙이고, 다음으로 우수한 칼에는 반영(磐영) 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름붙이지 아니하여 무명검으로 남아 있는데, 광은 이를 오자서에게 주었던 것이다. 오자서는 이 칼을 전제에게 주어 왕 요를 죽이는데 사용토록 하였다, 전제는 요리사로 가장하여 생선속에 이 칼을 넣고 요왕에게 다가 가 요왕을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쿠데타로 왕이 된 합려는 요를 처단한 검에 어장검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서 세 자루의 칼은 비로소 제 이름을 다 찾았다고 전해진다.

[참고]會稽之恥는 회계산(會稽山)의 치욕을 씻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 춘추(春秋)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저장성[浙江省]의 후이지산[會稽山]에서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하여 사로잡힌 몸으로 갖은 수모를 당하고, 겨우 본국으로 돌아가 20년간 상담(嘗膽)의 고생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켜 후이지산의 수치를 씻었다는 고사에 의한다.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에 그 유래가 전한다.<두산백과>




■ 회벽유죄 懷璧有罪
[품을 회/구슬 벽/있을 유/허물 죄]

☞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죄가 된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재앙이 온다.
[원]
匹夫無罪 懷璧其罪
[동]
회옥유죄[懷玉有罪]/포벽유죄[抱璧有罪]


[출전]
『左傳』
[내용]
중국 춘추시대 때 우(虞)나라를 다스리던 우공(虞公)은 동생 우숙(虞叔)이 가지고 있는 명옥(名玉)을 몹시 탐냈다. 우숙은 처음에는 아까워서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곧 후회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형에게 구슬을 바쳤다.
"주나라의 속담에 '
필부는 죄가 없어도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된다
'고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가져서 스스로 화를 불러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우숙이 말한 주나라 속담은,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훗날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우공에게 건넨 것은 바로 화근을 넘겨준 것이라는 말이다.

얼마 후, 우공은 또 우숙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보검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우숙은 형은 만족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중에는 내 목숨까지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반란을 일으켜 우공을 쳤다. 이 일로 우공은 홍지(洪池)로 도망을 치게 되었다<두산백과>


[원문]
周語有之 匹夫無罪 懷璧其罪 我徒以璧 不必招禍



■ 회사후소 繪事後素
[그릴 회/일 사/뒤 후/흴 소]

신윤복 미인도☞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


[출전]『논어(論語)』 팔일(八佾)
[내용]
자하가 물었다.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이다." "예는 나중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를 일으키는 자는 그대로다.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동양화에서 햐안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표현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공자의 말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인(仁)한 마음이 중요하므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참고1]이 구절의 전체적인 의미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지만 다만 회사후소(繪事後素)의 해석에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의 의미를 먼저 읽어보기로 하지요.

자하가 시경(衛風의 碩人)의 구절에 대하여 그 뜻을 공자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림은 소(素)를 한 다음에 그리는 법이지 않은가.”
자하가 말했다.“ 예를 갖춘 다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네가(商) 나를 깨우치는구나!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이러한 일반적 해석과 달리 회사후소(繪事後素)를 ‘그림을 그린 다음에 흰색으로 마무리하는 법이다’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후호(禮後乎)도 ‘나중에 예로써 마무리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자와 자하가 나눈 이 대화의 핵심은 미(美)에 관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소(素)를 먼저 한다, 아니다 나중에 한다고 하는 해석상의 차이는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의 핵심은 이를테면 미의 형식(形式)과 내용(內容)에 관한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소와 보조개와 검은 눈동자와 같은 미의 외적인 형식보다는 예(禮)가 더 근본적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회사후소(繪事後素)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후소를 그림을 그린 다음에 소(素)를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소이위현(素以爲絢)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도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흰 칠로 마감하여 광채를 낸다’고 해석하여도 상관없습니다. 문법적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소(素)는 예(禮)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예(禮)가 요구되는 시점이 어느 때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탕칠(下塗)을 한 다음에 그림을 그리든 또는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흰 칠로 마감하여 완성하든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경우든 예(禮)가 아름다움의 바탕이라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예로서 미를 최종적으로 완성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보아 양자간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신영복 고전강독>

[참고2]자하는 공자 말년제자로 본시 위(衛)나라 사람으로, 나중에 위문후의 스승이 되어 제(齊)나라 직하학파의 모델이 된 위나라의 학단을 형성했다. 자하는 문학적 상상력이 탁월했던 인물이다.
자하가 위나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하가 위나라의 노래, 위풍(衛風)의 한 수를 인용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노래는 위나라 장공의 제나라 태자 득신의 여동생인 장강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 제나라의 여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가 시집올 때 위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노래라 한다. 이 노래는 오늘날의 <시경>속에 위풍(衛風) "석인(碩人)"으로 편집되어 남아있다. "석인"이란 훤칠하고 늘씬한 여인을 뜻한다.

공자가 말하는 '회사후소'란 이러하다. 그림을 그리는데 먼저 색색의 물감으로 모든 형체를 구현하고 제일 나중에 흰 물감으로 그 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어 광채나게 만드는 최종 텃치를 하는 것과도 같이, 인간의 예라는 것은 온갖 갖가지 삶의 경험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최종적으로 그 인격의 완성을 최종적으로 텃치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하는 말하였다: "그림에서 흰 물감이 제일 뒤에 오듯이, 인간의 인격형성과정에 있어서는 예가 제일 뒤에 온다는 뜻이겠군요?" 결국 석인의 아름다움의 최종적 치장은 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에 공자는 기뻐서 말하였다. 이 때 '상(商)'이라는 것은 자하의 실제 이름이다. 애정이 듬뿍 담긴 친근한 호칭이다: "상아! 넌 정말 나를 계발시키는 사람이로구나! 이제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기여자'의 '기(起)'는 단순히 감정의 흥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라 할지라도 그 깨달은 바가 선생인 나를 앞서는 면이 있어, 내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도올 논어강의>



■ 회자인구 膾炙人口
[날고기 회/구운고기 자/사람 인/입 구]

☞'회자'란 '고기에 회친 것과 구운 것'이란 뜻으로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즉, 좋은 글귀가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출전]
『맹자』
[내용]
춘추 시대, 증참(曾參)과 그의 부친 증석(曾晳)은 모두 공자의 제자였는데, 증석은 양조(羊棗)를 즐겨 먹었다. 후에 증석이 세상을 떠났지만, 효성이 지극한 증석은 양조를 보아도 차마 먹지 못하였다.전국 시대에 이르러, 유가의 학설을 계승한 맹자의 제자들 가운데 공손추라는 사람이 이 일에 대하여 물었다."
스승님, 회와 볶은 고기, 그리고 양조 중 어느 쪽이 더 맛이 있습니까(膾炙與羊棗, 孰美)?
" "
그야 당연히 회와 볶은 고기이겠지(膾炙).
" "
그렇다면 증삼은 무엇 때문에 회와 볶은 고기는 먹고, 양조는 먹지 않았습니까(何爲食膾炙而不食羊棗)?
""회와 볶은 고기는 다같이 먹기를 좋아하는 것이고, 양조는 증석만이 먹기를 좋아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부르기를 피하여 입밖에 내어 부르기를 꺼리고 성(姓)은 부르기를 피하지 않는 것은, 성은 다같이 쓰는 것이고 이름은 혼자만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조(羊棗): 야생의 작은 감을 말한다. 처음에는 황색이었다가 익으면서 점차 검게 변하며, 모양이 양의 배설물과 같다 하여 양조(羊棗)라고 부른다.* 晳(밝을 석) 棗(대추나무 조) 與(줄 여) 孰(누구 숙) 何(어찌 하)


[예문]

▷ 그 노래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 사이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 인구에 회자하는 명시(名詩)




■ 회자정리 會者定離
[모일 회/놈 자/정할 정/떠날 리]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임.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
生者必滅 會者定離(생자필멸 회자정리),[반]去者必反(거자필반)-떠난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예문]

님의침묵--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제망매가--월명사


녹양(綠楊)이 천만사--이원익
녹양(綠楊)이 천만사ㅣ들 가는 춘풍(春風) 잡아매며
탐화봉접(探花蜂蝶)인들 지는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사랑(思郞)이 중(重)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푸른 버들가지가 천갈래 만갈래의 실과 같다고 해도 가는 봄바람을 어떻게 잡아 맬 수 있으며, 꽃을 찾아 다니는 벌과 나비라 해도 떨어지는 꽃을 어떻게 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중요하다고 하나 떠나가는 임을 잡을 수 있겠는가?





■ 효빈 效顰
[본받을 효/눈살찌푸릴 빈]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곧 ① 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의 비유, ②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의 비유.
[동]
서시빈목 西施目,서시봉심(西施捧心), 서시효빈(西施效顰).


[출전]
『莊子』〈天運篇〉
[내용]
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을 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장자(莊子)》〈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장자가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本質)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실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춘추 시대 말엽의 난세(亂世)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서시빈목'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예문]
심지어 부모의 핏줄을 타고난 까만 머리털까지 노랗게 물들여 가면서, 효빈을 일삼는 판이니….≪이희승, 벙어리 냉가슴≫



■ 효시 嚆矢
[울 효/화살 시]

☞전쟁터에서 우는 화살을 쏘아 개전(開戰)의 신호로 삼다. 모든 일의 시초.
[동]
最初(최초). /濫觴(람상) : 큰 강물도 그 근원은 술잔이 넘칠 정도의 작은 물에서 시작한다. /源泉(원천). 源流(원류). 水源(수원) : 물이 흐르는 근원. /破天荒(파천황) :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한 상태를 깨뜨린다. 아무도 생각 못한 놀라운 일을 하는 경우.

[예문]
▷ 홍길동전은

국문 소설의 효시
이다.
▷듣자니 음주와 흡연을

여성 해방 운동의 효시
로 삼는다면서요?≪이영치, 흐린 날 황야에서≫
▷ 66년 옛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자리) 대극장에서 공연한 '살짜기 옵서예' (최창권 작곡.임성남 안무)를 연출했는데, 이것을 국내

창작뮤지컬의 효시
로 친다. <중앙일보>



■ 후목분장 朽木糞牆
[썩을 후/나무 목/똥 분/담장 장]

☞썩은 나무에 조각하거나 부패한 벽토에 흙칠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 쓸모 없는 사람을 비유하거나 혼란한 세상을 비유함,
어떤 일을 하고자하는 의지와 기개가 없는 사람은 가르칠 수 없다,
썩어빠진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리 꾸짖거나 가르쳐도 희망이 없다=후목분토(朽木糞土)

[출전1]『論語』 공야장편
[내용1]공자의 제자 재여(宰予)가 대낮부터 침실에 들어가 있었다. 대낮부터 침실에 있는 것은 낮잠을 자고 있던가, 아니면 이성과 함께 있던가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생각되었다.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오也 於予與何誅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 어여여하주)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썩어 문드러진 흙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는 것이니, 재여를 나무란들 무엇하랴! 정신이 나태해져 있다고 간주된 재여는 스스으로부터 가망이 없다고 버림받은 것이다.

[출전2]『한비자』 현학편(顯學篇)
[내용2]
"담태자우(澹台子羽)는 군자의 용모라 중니(仲尼)가 보고 이를 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있어 보니 행동이 그 용모와 같지 않았다. 재여의 글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중니가 보고 이를 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있어보니 지혜가 그 변설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용모로써 사람을 취함은 자우(子羽)에게서 그르쳤고, 언변으로써 사람을 취함은 재여에게서 그르쳤다고 했다."



■ 후생가외 後生可畏
[뒤 후/날 생/옳을 가/두려워할 외]

☞뒤에 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배는 나이가 젊고 의기가 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는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말.

[출전]

《논어》
[동]후생각고( 後 生 高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청출어람( 出 於 藍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낫다


[내용]
공자가 말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가히 두렵다. 어찌 오는 사람들이 이제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으랴.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될 뿐이다.

자기보다 먼저 태어나서 지식과 덕망이 나중에 태어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생( 先 生 )이고,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 즉 후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후생( 後 生 )이다. 그런데 이 후생은 장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외( 畏 )’란 좋은 의미에서 존경하고 주목할 만한 것을 말한다. 즉, 뒤에 태어난 사람인 후배들에게 무한한 기대를 걸고 한 말이다. 그들의 장래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알 수 없는 기대가 섞인 두려움인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고 말함으로써 젊었을 때 학문에 힘쓸 것을 충고하는 것이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 젊은이는 항상 학문에 정진해야 하고, 선배되는 사람들은 학문을 하는 태도가 겸손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후생가외라고 한 것은 그의 제자 중 특히 재주와 덕을 갖추고 학문이 뛰어난 안회( 顔 回 )의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이다.

이 말은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후생각고( 後 生 角 高 )’라는 말과도 뜻이 통한다. 후생각고는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훨씬 나을 때 이르는 말로 ‘청출어람( 靑 出 於 藍 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네이버 백과

[원문]





■ 후안무치 厚顔無恥
[두터울 후/얼굴 안/없을 무/부끄러울 치]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동]

철면피鐵面皮



[예문]

▷ 후안무치로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명색이 사대부 집 규수가 하인 놈하고 혼인이라뇨?≪박경리, 토지≫
▷ 무언지 하는 짓들이

후안무치하고 염치가 없어

보이기조차 하였다.≪이호철, 문≫
▷ 사람이 이렇게까지 뻔뻔스러울 줄은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리에 앉아서

후안무치한 인간 후안무치에는

앞으로 한도를 두지 않기로 내심 결심하였다≪제인오스틴- 오만과 편견≫

▷ 일본 지도자들은 임진왜란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동북아를 전쟁으로 몰아간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전쟁의 잘못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과 군대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한

후안무치한 태도

등이 그 예이다. 그러면서 북핵 사태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한 틈을 타 개헌 논의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2006 세계일보>




■ 흉유성죽 胸有成竹
[가슴 흉/있을 유/이룰 성/대나무 죽]

☞대나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마음 속에 이미 완성된 대나무 그림이 있다.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에 대한 계획, 방침 등이 이미 마음 속에 결정되어 있다

[출전]

소식(蘇軾)·조보지(晁補之의 시) 與可畵竹時胸中有成竹(여가화죽시 흉중휴성죽)

[내용]

문동(文同, 文與可)은 북송 시대의 사람이다. 인품이 고결하고 학자로서 유명했으며, 동시에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고, 전(篆) ·예(隸) ·행(行) ·초(草)의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그는 특히 대나무 그림에 뛰어나서, 그가 그린 대나무는 마치 정말로 살아 있는 듯, 바람 불면 사삭사삭 소리가 나는 듯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고 한다.

문여가는 대나무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창가에 수많은 대나무를 심고, 매일 정성껏 가꿨다. 잎이나 가지가 자라는 모습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계절의 다른 모습, 비 올 때나 맑을 때나 안개 속의 서로 다른 자태를 살폈다. 오랜 세월이 흐르자, 대나무의 모든 것을 훤히 알게 되어, 눈을 감으면 대나무의 모든 것이 눈 앞에 수없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는 붓을 쥐고 그저 손을 몇 번 휘두르는가 싶으면, 종이 위에는 이미 절묘한 대나무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의 이런 경지를 문인인 친구가

흉중유성죽(胸中有成竹)

이라고 표현했다. 흉유성죽(胸有成竹)은 그 준말이다.

[참고]

묵죽의 회화사상 뚜렷하게 일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북송의 문동(文同,960-1279) 때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남송의 미불(米揷)이 쓴 「화사」에 의하면 <심묵(深墨)은 전면이 되고 담묵은 뒷면이 되는데 이것은 문동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였는데 미불은 당시 예술계의 고증학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 그의 학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나 이미 문동 이전에도 죽화에 대한 새로운 창조 기풍이 있었기 때문에 미불의 논법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또 문동의 죽엽화법은 입체감과, 수묵의 취미에서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전대에도 더욱 그런 기풍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문동은 죽화법의 전형을 형성하였고 역대로 그의 전형을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문동을 묵죽화의 비조(鼻祖)라고 할 수 있다.

문동의 묵죽화법은 자연의 객관적인 관찰과 규율로 사물의 형태를 흉중(胸中)에 새겨두어 소위 <흉유성죽(胸有成竹)>을 그려야 한다는 것으로 형호(荊浩)의 산수화법과 매우 흡사한 논법이며 당 장조(張璪)의 주관정신론과 객관정신론의 이론과 같다. 송의 문인학자 소식은 문동과 외사촌간이었는데 문동의 죽화는 흉중일기라고 평하였으며 또 그를 문동파라고 하였다




■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
[흑 흑/소 우/날 생/흴 백/송아지 독]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는 말로, 재앙이 복이 되기도 하고 복이 재앙이 되기도 한다


[유]塞翁之馬 새옹지마 / 轉禍爲福 전화위복

[출전]

열자(列子) 설부(說符) 편

[내용]

송나라 사람 중에 어질고 의로운 행동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삼대에 걸쳐 계속 이것에 힘썼다.하루는 그 집에서 기르는 검은 소가 까닭도 없이 흰 송아지를 낳자 그것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이것은 길한 징조이니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시오."

그로부터 일년 후, 그의 아버지가 까닭도 없이 눈이 멀었다. 그런데 그 집 소가 또다시 흰 송아지를 낳았다. 그의 아버지는 또 다시 그의 아들을 시켜 공자에게 물어보도록 하였다. 이 때 아들은 말했다."먼저번에 그 분에게 물어보고 눈이 멀었는데 또 무엇 때문에 물으려 하십니까?"

아버지가 말했다."성인의 말씀은 먼저는 어긋나다가도 뒤에는 들어맞는다. 다시 그분께 여쭈어 보거라." 그 아들이 또다시 공자에게 물어보니, 공자가 말했다. "길한 조짐이로다." 그리고 다시 그 송아지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아들이 돌아와 말을 아뢰니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공자님의 말씀대로 행하거라." 그로부터 일년 후, 그 집 아들도 또 까닭없이 눈이 멀었다. 그 뒤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여 그들이 사는 성까지 포위하였다. 백성들은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고 유해를 쪼개어 밥을 지었다. 장정들은 모두 성 위로 올라가 싸우다가 태반이 죽었다. 그러나 이들 부자는 모두 눈이 멀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포위가 풀리게 되자 그들은 다시 눈이 회복되어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흥진비래興盡悲來
[흥 흥/다할 진/슬플 비/올 래]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온다

[원]

흥진비래·고진감래 興盡悲來·苦盡甘來--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번갈아 온다.

[ 예문 ]
망 부 가 - 최 희 (2006 오마이뉴스에서 옮김)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어느봄날 창문을 반쯤열고 하염없이 앉았으니 옛일이 새로워라 안마당에 피는꽃은 지난밤비에 만발하다 아름다운 자태색조 뉘를 위해 반기려나 벌나비 춤을추니 이내심사 참담하여 사랑마당 철축꽃과 동산의 해당화는 방긋방긋 웃는 모양 화려한 목단화는 자태향기 그윽하다 구곡에 맺힌 회포 내심회를 자아내니 하물며 이는춘풍 어이하여 풀어낼꼬 우리인생 초목만도 못하니라 한심하다 고대광실 큰집에서 홀연히 혼자앉아

고진감래 흥진비래 오는일을 상상하니

심중의 무한정수 가는길은 구천이라 자식자손 가득하나 내마음을 어찌알리 가신양반 더듬어서 지난일을 회상하니 텅빈듯한 이내심사 미치는듯 취하는듯 빙청에서 통곡한다 철따라 의복이며 침구등절 손질하나 어느날에 반길까요 생시와 다름없이 조석으로 문안해도 아는기척이 없사오니 내회포를 자아내어 통곡도 하였으나 부질없는 일이로다 남이알까 조심이라 진애세상 하직하고 가신양반 상봉하여 심곡에 쌓인회포 속시원히 자아낼꼬 횡설수설 그렸으니 보는이는 웃지마소 (정축 삼월 순수일 동계 십사대 종부)


▷ '고박정희 대통령' 흉잡을 때는 즐겁겠지만 노무현대통령 흠잡히기 시작하면

흥진비래

실감할 날 머지 않을 것이다. 화무십일홍이고 괴불삼년에 권불십년이란 것도 모르는가?<2006 한나라당 논평>




■ 희생 犧牲
[희생 희/ 희생 생]

☞천지신명, 묘사(廟社)에 제사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 주로 소, 양, 돼지 따위를 바친다. ≒뇌생(牢生)·생뢰(生牢)·전희(?犧) /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

[출전]『書經』

[내용]

희(犧)와 생(牲)은 약간 다르다. 희(犧)는 소(牛)의 기운(羲)이라는 뜻이다. 제사(祭祀)를 지낼 때 소를 바침으로써 신(神)으로 하여금 소의 기운을 누리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일지라도 얼룩소는 금물(禁物)이었다. 곧 희(犧)는 털에 잡색(雜色)이 섞이지 않은 소를 뜻한다. 한편 생(牲)은 소(牛) 중에서도 살아있는(生) 소를 뜻한다. 그것은 소를 잡아 고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소를 바쳤다는 뜻이다.

곧 희생(犧牲)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이나 종묘(宗廟)에 제사를 올릴 때 제물로 올렸던 소를 의미한다. 다만 암컷은 바치지 않고 튼튼하고 우람한 수컷만을 골라 바쳤다. 그런데 희생(犧牲)에는 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디 '삼생(三牲)'이라 하여 양이나 돼지도 제물로 쓰곤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축 대신 사람이 희생(犧牲)이 된 적이 있었다.

하(夏)나라의 폭군(暴君) 걸왕(桀王)을 정벌한 탕왕(湯王)은 은(殷)나라를 세웠다. 천하(天下)를 잘 다스렸지만 때아닌 한발(旱魃)로 백성의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무려 5년간 비가 오지 않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해야 할 판이었다. 백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그는 자신이 직접 희생(犧牲)이 되어 기우제를 올렸다.

그는 머리를 깍고 사지를 묶은 다음 희생(犧牲)이 되어 제단위에 섰다. 그의 정성에 감격한 天神(천신)이 큰 비를 내렸음은 물론이다. 이 때부터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것도 희생(犧牲)이라고 하게 되었다.

[참고1]신령에게 물품을 바치는 공물(供物)과 동물을 죽여서 행하는 동물희생의 두 가지가 있다. 공물에는 음식물과 일반물품의 두 경우가 있는데, 신과 사람과의 관계가 확립되면 음식물을 공물로 하는 일이 많다. 동물희생은 동물을 살해하는 것으로써 그 영혼을 통해 신에 대한 기원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과 동물의 영혼을 신령에게 바친다는 뜻이 있다.

또 인도 산지(山地)의 레디족이나 카리아족, 인도차이나의 요족 등 화전농경민들 사이에서는 동물의 피가 작물의 증식에 주술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떻든 공물이나 동물공양에서 공통적인 것은 그 대상물의 성화(聖化)와 희사(喜捨)이며 E.뒤르켐은 신성한 것의 제공을 희생의 본질적인 요소로 들고 있다. <두산백과>

[참고2]번제 [燔祭, sacrifice]이스라엘 민족이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야훼신에게 올린 가장 일반적인 동물의 희생의식이다. 희생’이란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는 산 짐승을 말하는 명사(名詞)인데,

희생을 제단 위에서 불로 태워 그 연기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공희

(供犧)의 방법이다. 동물을 통째로 굽는다는 뜻에서 전번제(全燔祭)라고도 불리는데(시편 51:19), 하느님에 대한 봉헌자(奉獻者)의 모든 헌신을 상징하는 동시에 속량(贖良)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번제는 매일 희생물을 바치는 외에도 속죄일(레위 6장)과 3대 절기에도 드렸다. 희생의 대상이 되는 동물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 ·양 ·염소 등을 썼는데 가난한 이들의 경우에는 산비둘기 ·집비둘기 등을 희생으로 바치기도 하였다(레위 5:7).

[참고3]구약성서에 나오는 속죄를 위한 희생으로 신에게 바치는 양에서 나왔습니다. 옛날 유태인 사회에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속죄의 날에 최고성직자가 두 마리의 양을 끌고 나옵니다. 그는 두 마리 중의 어느 한 마리를 신에게 희생으로 바치고 또 어느 한 마리를 스케이프고트로 삼느냐는 것을 가립니다. 이어 그는 백셩들이 저지른 죄를 스케이프고트감으로 정해진 양의 머리 위에서 고백합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죄를 모두 걸머진 스케이프고트는 황야 속으로 도망가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양을 죽여서 신전에 모셨습니다.
[예문]
▷ 희생을 무릅쓰다
▷희생을 당하다
▷ 희생을 강요하다
▷ 대통령은 평화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무고한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읍내 전투를 피해 병력을 외곽으로 분산시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조정래, 태백산맥≫
▷ 희생 제물로 바치다.
▷ 강대국에 희생된 민족
▷ 전쟁으로 많은 젊은이가 희생되었다.
▷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가 희생되는 경우는 흔하다.
▷ 이 사건에 연루되어 무고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될 것이다.
▷ 희생적 사랑
▷ 희생적인 노력
▷ 그 사람은 불쌍한 고아들을 위하여 평생 동안 희생적으로 봉사하였다.
▷ 의로운 일에 자기를 희생하다
▷ 국가나 집단을 위하여 개인을 희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불쌍한 생민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한 사람이오.≪유현종, 들불≫




■ 희황상인 羲皇上人
[숨 희/임금 황/위 상/사람 인]

☞ 복희씨 이전의 오랜 옛적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을 잊고 한가하고 태평하게 숨어 사는 사람을 이르는 말. * 羲皇 : 복희씨의 다른 이름

[참고1]

희황세계 [羲皇世界] : 복희씨 이전의 오랜 옛적의 세상이라는 뜻으로, 백성이 한가하고 태평하게 사는 세상을 이르는 말. = 태평세월, 강구연월(康衢煙月, ,요순시절,

[참고2]

복희씨는 중국의 삼황오제중 한사람이며 중국인들의 시조라고도 불리며 석기시대말기 중국전설속의 인물입니다.( 삼황중에서도 제일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오제중에도 동방천제라고 불리움)

전설에 따르면 복희씨(약 만년전) 중국 간수성 - 천수시 - 진안현에서 임신12년 만에 태여났다. 태여났을때 사람의 머리와 뱀의몸을 가졌으며 후에 여동생女娲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고 인간의 시조라고 합니다.

복희씨는 하늘과 땅 음과양의 변화를 통해서 8종의 간단하고도 심오한 부호로 세상 만물을 표현하는 팔괘를 창조한분이기도합니다. 그는 거미줄을 통해서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고 사냥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태여났을때 뱀의 몸을 가졌기때문에 사람들은 "용의 후예" 라고 불렀으며 그는 복장인 사슴가죽과 풀잎도 뱀무늬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음악과 의학의 일인자 뿐만아니라 훌륭한 제왕이기도 했답니다. 그는 동쪽의 태양이 뜨는 곳부터 현재의 조선(우리나라)을 넘었으며 오제(五帝)중 동방천제(東方天帝)로 불리웠다.

[예문]

을프락 파람하락 노혜로 놀거니
천지도 넙고넙고 일월도 ?彭℃榻?.
羲皇(희황)을 모를러니 이적이야 긔로고야.
신선이 엇더턴지 이 몸이야 긔로고야.
--송순 <면앙정가> 본사희황상인(羲皇上人)

南風(남풍)이 건듯 부러 綠陰(녹음)을 혜텨 내니
節(절) 아난 괴꼬리난 어드러셔 오돗던고.
羲皇(희황) 벼개 우에 풋잠을 얼픗 깨니
空中(공중) 저즌 欄干(난간) 믈 우에 떠잇고야
--정철 <성산별곡>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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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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