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

외통넋두리 2008. 7. 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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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010310 머슴


‘일 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모든 가용 노동력을 생산에 원시적으로 내 몰던 그 때에는 머슴이 주인이고 주인은 죄인이 되었다. 주인은 머슴을 전답과 함께 내주어야 했고 따라서 머슴은 제 세상을 만났다.

 

아버지의 병환은 농사보조자의 도움 없이는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처지임에도 그 알량한 나, 이렇게 아버지의 도움은커녕 곁에 있어드리지도 못하는 주제의 나를 만들려고 학교에 진학하게 하셨다.


진학하면서 나의 내면의 갈등은 점증됐다. 우리 집안 형편으로는 반드시 내가 집안을 돌보고 조상의 기제사와 묘소를 돌보아야 하는 사정을 잘 알면서도 나의 지향을 억지하지 못하고 그냥 하는 대로 바라만 보려니, 품앗이만을 가지고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은 고달프셨다.


일을 돕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앓고 있었던 때였다.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자위하고 다시 힘찬 팔을 저었다.

 

‘너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체질로 태어났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곤 했다. 답답할 따름이다. 그 시절 전답을 남에게 내어주어서 대리경작을 시킨다면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그 하늘 아래서는 당장 당에서 농사를 짓는 그 사람에게 전답을 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못하고 만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자수성가로 오랜 세월을 인고로 지낸 경험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친 헐벗음과 굶주림 속에서도 장래의 우리들을 위해서,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노심초사, 이룩한 피땀 어린 전답을 쉽게 남에게 내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통을 내 한마디로 들어드릴 수 있었으련만 이기심이 있었든지 아니면 더 큰 포부를 이룩해서 부합된 집안일을 도우려고 했든지 기어이 들어 드리지 못하였다.


또렷이 생각나는 것. 우리 집이 장손이면서도 손이 늦게 벌어서 작은 집 보다도 뒤쳐지는 것, 당숙들의 사회적 진출과 벌어진 자손들을, 아버지 당대에 어느 것 하나 이룩하시지 못한 것을 한탄하시며 나의 분발을 촉구하는 말씀을 아주 어린 나에게 생생히 들려주시던 생각이 또 다른 나의 한쪽 마음을 잡아당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많은 고민을 했고 갈등도 있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우리 삼 형제 중 누군가는 집을 떠나서 집안을 위해서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동생들을 좀 더 나은 쪽으로 이끌자면 많은 집안들의 맏이가 집안일을 돌보고 조상을 섬기는 집안의 전통은 깨야 만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집안의 동양(棟梁)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용단했다. 그러나 그것이 잘됐는지 못됐는지 아직 우리집안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나는 이대로의 경과를 순리로 받아들일 수밖엔 없다.


만약 내가 집안의 일을 돕고 농사일에 매진했더라면 우리부모님은 여생을 조금은 편하게 보내시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됐다면 내 운명도 지금과는 다르게 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함께 해보면서, 그러면 지금의 우리 애들과 인연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지금의 내 행동이 옳았으며 전혀 후회할 일이 아니란 결론까지 얻게 된다.

 

이렇게 되니까 왜 쌍방의 일이 동시에 이룩되질 못하고 어느 일방을 포기해야 하는지, 인간의 한계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필경 이런 일을 함께 이룰 수 있는 대안이 있을 텐데, 답답하고 가슴이 조인다. 부모님을 도와서 농촌을 지켰다면 오늘의 내가아닌 다른 내가 됐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면 이상한 환상에 끌려들어 간다.


즉 나의 다른 나가 내가 지금의 길을 걸으면서 이전에 갈림길에서 헤어져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꿈도 꾸어본다. 그렇게 됐다면 나의 염력이 아마도 내 육체가 없더라도 내 동생을 통해서 내 뜻이 어느 정도는 정확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다. 우리가 모르는 차원의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런 일을 생각 할 수 있다는, 그 것이 바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생각은 가능성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억지로 학교문턱을 두드리는 나의 행동에 한 말씀의 토도 안 다시고 묵묵히 응해주신 부모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집안의 융성한 번영이 있기를 고대한다. 그렇지 못할진댄 저승에서 이룩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내 염원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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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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