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

외통프리즘 2008. 10. 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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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6.030617 새댁


새댁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지만 눈길은 주지 않고 몇 발짝 옆으로 비껴 옮기면서 마루문을 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퇴근길 벨소리에 인사차 나왔던 걸게다.

아내는 새댁이 닫은 문소리를 신호로 내 옷소매를 끌어 안방으로 방향전환을 시키곤 뒤 딸아 들어와 귀엣말로 일렀다.


'오늘부터 발걸음도 조심하고 옷매무새도 살펴'야 된다고. 당부 투로 이르다가 어르듯 눈 깜박이며 잇는다.


'집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형편이니 불편해도 참으라.'나?

우리 형편에 ‘건넛방을 비워두기보다는 몇 푼이라도 보태는 것이 낫다’나?


바른대로, 나는 참을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새댁보다 오히려 더 확실한 나그네신세였으니 이름만 주인이고 밤낮으로 남자 없는 집으로 던져 놓기에 말이다. 평일은 그렇다 치고, 일주일 중 하루라도 쉬는 날이 있어야 피차가 불편할 텐데 연 중 무휴의 직장 생활이니 어쩔 수 없이 있으나 마나한 ‘바깥사람’인지라 지붕아래 부엌이 하나요, 화장실이 하나인들 무슨 상관이고, 들고나는 출입문조차 마주 보인들 개의할 일이 아닐 것이지만 버젓이 돈을 주고 세든 그 새댁의 심사를 알 길이 없어서 단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거기다가 갓난아이까지 있으니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않는, 새댁의 우리 집 곁방살이 결정이다. 어지간히 허술한 살림인 것을 안쓰럽게 느끼면서도 우리보다는 나은 출발이구나 싶기도 한, 내 삐뚤어진 생각에 쐐기를 쳐 넣었다.


며칠 후, 신랑이란 젊은이와 마주치게 되었고 가벼운 인사를 하고는 다시 스쳤다. 바쁜 시간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잃고 말았던 터에 어느 날 아내로부터 사연을 들어본즉, 남편은 아랍어를 전공하고 얼마 있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유학을 떠난다고 하는데 그사이 우리 집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훤칠한 키에 허여멀겋게 생긴 학생은 보기에 말수가 적은 사람 같고 살림에는 아무 계획 없이 그저 상황에 이끌려서 예까지 오게 된 것 같았다. 초대면 인사만 했을 뿐 몇 달이 지나는데도 다시 얼굴을 맞댄 적이 없었으니 그도 나도 어지간히 바쁜 사람이다.


부질없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곡예사의 그네 타기 같은 젊은이들의 사랑에 내 머리가 어지럽고 지금은 비록 남의 집 눈치 보며 비를 피하지만 무한의 잠재력을 담보로 사랑의 씨를 뿌리는 그 풋풋한 싱그러움이 있어서 내 마음 설렌다. 그들은 두려움이나 회의 같은 것은 이미 저 뒤쪽으로 밀어 제친, 경지의 사람들이다. 오직 파란 불빛만이 점점이 그들의 길 앞에 끝없이 켜져 있을 것 같아서 부러움 마저 들면서 내 마음을 노랗게 색칠한다.


또 다른 생각에 빨린다.


필시 그들은 부모님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그래서 흘러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학생인 신랑이 먼 유학길을 떠나서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지루한 시간을 새댁 혼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딸린 갓난아이와 함께 겨울을 어떻게 날지, 가슴이 답답하다.


굳은 언약으로만 살아지는 꿈속의 삶이 아님은 신랑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뒤 그들이 오기를 접고 집안의 권유로 새 출발을 도모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새 생명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숨이 막혀온다.

 

그것은 나의 못된 사고의 단면으로 치부 하드라도 최소한 시집이든지 친정이든지 들어가야만 새 생명의 앞이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작은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것이었으면 내가 이렇게 남의 일로 머리 아플 일이 없었을 것이거늘, 어쩐지 미심쩍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유학을 떠나고 나서 새댁이 시댁으로, 아니면 친정으로라도 들어가서 새 생명의 앞이 트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다.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부부가 함께 유학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아기와 함께 아니면 아기는 시부모나 친정부모에게 맡기고서 부부끼리만.


주고받은 말 한마디 없이 남의 집 앞길을 엮다가 뿌리를 파보는 내 사유(思惟)의 바다, 거기에서 헤어날 그 날이 곧 내가 꿈꾸는 참된 표상의 평온한 삶이 될 것이다.


바탕위에 지어지는 사유의 집이기 때문이고 그 바탕이 없으면 집 또한 지을 수 없는 연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바탕은?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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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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