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입구

외통프리즘 2008. 10. 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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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7.030224 을지로 입구


무엇이든지 그 뜻과 생성 원리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일상으로 쓰는 말이나 보이는 것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은 내 성정(性情)이겠지만 체계 있는 습득을 하지 못한 때문에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신경 반응인 것 같다. 그래서 대화엔 조심을 하면서도 이따금 말끝에 토를 달아서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때가 많다.


어릴 때 동경하던 서울은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내 이상을 키우는 도시였다. 그렇지만 가보기는 어림도 없는 꿈속의 나라였다. 헌데 지향하는 바가 있어서 그랬던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 그런지 곡절 끝에 서울에 닿았다.


서울나들이는 직장과 집을 겨우 오갈 만큼 길눈을 틔었고 이제 역한 매연도 익숙해질 때쯤 아내의 심경도 안정되어 나들이도 제법 하게 되었다.


‘을지로입구’란 모르긴 해도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딴 거리일 텐데 그렇다면 그 이름을 만들 때 왜 ‘입구’를 붙였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행정구역 명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의 입에 왜 그렇게 오르내리는지 모르겠다.


길 위에 버스처럼 생긴 전차가 다닐 때에 얼떨결에 그 길의 첫머리를 입구라고 일컬었다고 치고, ‘을지로입구’라고 굳이 붙인다면 ‘종로입구’와 ‘청계천입구’도 있어야 할 텐데 다른 곳은 없고 오직 ‘을지로입구’만 있는 것으로 보아 거기가 길 시작 지점인 것은 짐작이 가는데 무언가 뒤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입구’라는 표현 때문이다.


왜 고유명사에 추상명사를 쓰느냐 말이다. 이를테면 을지문덕 장군의 기백을 살린다고 해서 ‘기백(氣魄)’이라고 써도 되는가 말이다. 그리고 거기는 전차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전찻길이 없어진 지금도 ‘입구’이니 '을지로'는 자루처럼 밑이 막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을지로입구'는 길로(路)자가 붙어있어서 서울의 어느 한 번화가일 것 같았고 여느 시골의 이(里)나 동(洞)보다 북적일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늘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서울의 명소가 왜 여기뿐이랴 만 이 괴상한 이름이 붙은 곳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군대에 있을 때, 단체로 외출을 나왔을 때에 전차를 타다가 차장의 안내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긴 해도 발을 디뎌보진 못했다.


그때부터 심정적인 거부감을 갖게 했다. 전차가 없는 지금도 전차를 타고 다니는 것같이, 옛날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땅이름은 특히 동네이름은 확실해야하거늘 입구, 출구, 허리, 식이면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서울 김 서방’ 네 집이나 다를 바 없겠고 꼬랑지인 '을지로' 칠 가인지 팔 가 인지에서 들어 올 때도 입구니까 거기도 을지로 입구 일 테니 헷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가 먼저 부른 사람 마음대로 된 이곳, 거기는 분명 번지 없는 곳인데 거기를 곧 잘 약속장소로 삼는다.


아마도 전차를 타고 다닌 사람들의 입버릇이 그대로 굳어졌을 테지만 허황(虛荒)된 이름이다.




우리 내외는 어느 날 그렇게 잡기 어려운 택시를 운 좋게 얻어 타고 시내로 나갔다. 택시기사는 보편화되어 굳어진 을지로입구의 명동 반대쪽에 차를 세우고 "여기가 '을지로입구'라며 목적지에 왔다"고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아내의 용무는 아마 명동이었는지는 몰라도 여기는 아니라는 듯 도무지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 택시를 탈 때 분명 '을지로입구'라고 택시기사에게 말했고, 택시기사는 그대로 을지로 입구에 내려드리는데 왜 아니라는 것이냐는 투다.


아내는 그 반대편에 세워주길 바랐던가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을지로입구'는 맞는데 가고자하는 곳의 반대방향의 입구인 것이다.


응당 시비는 입 밖으로 튀었고 잘잘못을 가릴만한 곳은 아무데도 없다. 말 그대로 그곳이 '을지로입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처럼 선민인체 둔갑하여 매연을 들이키며 진정한 서울시민이라도 되어보려고 '미아리'에서 예까지 택시를 탔건만 편히 목적지에 오기는커녕 길을 건너는 불쾌한 수고를 달게 받아야 했는데, 이 때에 우리의 실수는 ‘명동’으로 간다고 했어야하는데 남들이 말하는 '을지로입구'라고 했기 때문에 받는 '벌' 걸음인 것이다.


어딘가 예스럽고 환상적인 ‘동경가(憧憬街?)’였던 명동나들이는 초장부터 흐린 날씨처럼 침울했고, 한껏 기분을 내려했던 외출이 화풀이할 대상없는 서울사람 모두에게 억울하게 속은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아직은 서울사람 행세를 하기엔 어딘가 한참 모자라는, 먼데 있는 명동이고 '을지로'인 것이다.


산다는 것이 자기를 나타내려는 극치의 추구라고 한다면, 우리부부는 아직 미시(微示)적 행보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여기서 들어난 것 같아서 씁쓸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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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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