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외통프리즘 2008. 10. 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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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5513.030414 고양이

무심코 스쳐 지났던 풀포기의 모양새도 정겹게 눈에 들고, 언덕 위의 들꽃이 향기로 다가오며 울 넘어 뻗어 나온 남의 집 나뭇가지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깊이 음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고향에 계시는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도 진하게 물들어서 또렷한 윤곽으로 눈앞에 다가오곤 했다. 마치 어릴 때 과자 따먹기 경주에서 힘껏 달려 작은 과자 한 개를 입에 넣고 숨을 고르며 결승점에 다다르곤 다음의 다른 경기를 생각하듯, 여유마저 부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런 때, 이렇게 한가한 때, 빈 머릿속을 흔들어 채우는 엉뚱한 방해꾼이 나타났다. 포유류의 인자 탓일까? 아니면 야행의 촉수 탓일까? 선취(先取)특권이 암묵(暗黙)되여 미친 듯이 달리는 저 쥐들의 난동소리, 먹이든 짝이든 쫓아가서 진탕 요절과 물고(物故)를 내는 듯이 이들의 소란은 가히 내가 사는 인간사와 진배없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딴은 나도 저렇게 살았구나 싶어서 혼자 부끄럽다.

 

도둑이 들어와도 가져 갈 것 없는 우리네 살림에 쥐 먹을 것인들 있을까만, 아랫방 새댁의 후한 솜씨가 쥐를 떼거리로 모으고 있으니 마음에 없는 서(鼠)생원들의 집안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쥐틀을 놓아 서생의 장례가 따를 때엔 필시 그것의 매만짐이 내게 닥칠 터이니 께름하고, 소스라치는 소리는 운구(運柩?)를 바라보는 아내의 비명일게 틀림없으니 마음이 굳어지기 전에 아서라 체념하고, 더군다나 그 씨 음(氏音)이 같은지라 엄두를 내지 못하여 남의 힘을 빌려서 퇴치하려든 참이었다.

 

이즈음 한창 퍼지던 고양이 기르기가 우리 집에도 파고든 턱이다.

 

성글게 난 털 속으로 갈비뼈가 보일랑 말랑한 가냘픈 덩치는 수수깡 맞춤 같이 허물어질 것 같았다. 가느다란 목에다 머리를 달고는 처지듯 숙여있는 어설픈 모양샌데, 그래도 수염만은 위엄이 서려있고 불을 켠 눈빛이 고양이임을 알아챌 수 있게 한다. 이따금 입을 벌려 포식자의 본성을 드러내어 날카로운 이빨을 보일 때, 비로써 믿음직한 고양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지기조차 조심스런 여린 새끼고양이는 쥐를 잡기는커녕 쥐한테 물려 죽을 것 같은데도 시장에서 고양이를 파는 이의 늘어놓는 사설은 당당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하고 어설픈 새끼 고양이를 드렸는데, 용하게 우리를 잘 따랐다.

 

그날 저녁부터 쥐는 ‘쥐 죽은 듯이’ 사라졌다.

그렇게 소란스럽던 다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쥐 소동 없는 밤을 지내기는 했지만 새끼고양이의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었다. 얼씬하지 않는 쥐들이 오히려 이상 하리 만치 고양이의 효험은 확실하게 있었다.

 

고양이는 제 생존의 방편으로 몇 마디를 울었(포호했?)을법한데 종적을 감춘 쥐의 본능적 경계가 나를 놀라게 한다. 쥐는 안전을 위해서 멀리 도망쳤고 고양이는 그 공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이불 속으로만 파고든다.

 

‘괭이 밥’만큼만 먹는 요놈의 고양이지만 생선 선호가 언제나 우리를 특별메뉴에 신경 쓰이게 하고, 그 설거지 또한 별도로 해야 하는 이종(異種)간의 식사가 작은 부담이다.

 

고양이의 화장실이 우리의 화장실보다 더 사치스런 것, 감히 우리는 방안까지 화장실을 드리지 못하지만 고양이는 제 마음에 드는 곳에 화장실을 마련한다. 또 우리네처럼 갈아입지 않고 철철이 털옷을 입는 고양이는 털갈이를 아무데서나 제 마음대로 하니 어찌 우리 사람의 옷 가리듯이 가름 할 수 있기를 바라겠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작은 고민과 고양이의 운명선택을 강요하는 한 매듭이 되었다.

 

고양이를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니 우리가 감내 할 수박에 없지만 그 때에 딸 녀석이 천식으로 고생하다가 다섯 마리의 소 허파를 다려먹고서야 겨우 병마의 고삐를 잡은 터였는데, 털갈이의 뒤끝이 딸 녀석에게 미치니 어찌 고양이를 쓰다듬을 수 있겠나 싶어서 남의 집에 주기로 하고, 차라리 쥐 성화를 감당하기로 했다.

 

그래서 먼 이웃에게 선심으로 넘겨주었다. 영물 같은 고양이는 우리마음을 무척이나 아리게 했다.

 

이웃이라고 해도 골목이 다르고 예닐곱 집 건너인데 뻔질나게 우리 집에 오는 이 새끼고양이의 심사를 헬 길이 없어서 고심 고심하다가 방도를 생각해낸 것이 그 새끼고양이가 쓰던 밥통 물통 변기 놀이물건들을 몽땅 그 집에 주기로 하고 다시 싸잡아 보냈다.

 

헌데도 어느새 왔는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우는 그 소리는 호소와 애원이 가득한 절규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문패가 없다. 따라서 번지도 없을 것이다. 호화나 사치는 더더욱 모른다. 제 살던 그곳의 냄새와 환경이 모두이고 거기가 터전인데 그 터전을 찾는데 뉘라서 말리고 거부할 수 있는지, 고양이는 아는바가 없다.

 

본능적 귀소 행각의 고양이는 나를 무언으로 가르치고 있다.

 

"나는 여기가 내가 자란 곳이고 나와 더불어 있는 모든 것이 내게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것들이니 나를 밀어내지 마시오! 나는 다만 내가 자란 내 고향의 흙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왔으니 제발 나를 보내지 마시오! 주인양반! 주인양반도 집을 떠나서 부모 동기간 생각에, 고향산천 밟아보고 싶어서 자나 깨나 신음하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날 당신의 고향나들이쯤으로 여겨서 내버려두시오! "

 

고양이는 나에게 회한으로 사무치게 울부짖도록 하는. 작별 없는 이산의 아픔을 거듭 일깨웠고, 오만한 인간의 스스로 묶인 몸부림을 가소로워 하품하고 있었다.

 

마루방 한 구석에서 애원하는 고양이의 눈빛이 나를 미치도록 그립던 고향으로 끌어가면서, 우리 집 배나무 잎에 얼굴을 스치게 하고 있다. 함께, 고향 집의 두엄냄새가 향긋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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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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