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03.31 공허2
내 살던 집을 아주 떠나지도 않는데
웬 지 섭섭하다.
잡을 사람도, 거들사람도 없는 나,
어깨에 힘 빠진다.
뉘 반길 이 없고 기다리는 이 없는데도,
나는 이끌린다.
어쩐지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아서
채비하고, 눈감는다.
그렇게 하늘을 날아올랐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 이스탐불.
옛 스승, 칠판 그림과 몸짓은 보여도
내 그리는 고향에는 빗대지질 않는데,
선사의 동굴에 서면.
내 조상 ‘괸돌집’은 가난 했는데,
당 대의 영화는 이곳에도 있었구나,
싶어서.
또 시공(時空)을 주름 잡는다.
포스몰스 해협을 바라보면.
내 고향, 그 끝 간 데 없던 수평선이,
서유럽의 대륙을 멀리 밀어내며,
내 가슴.
또 바닷가에서 긴 기지개를 켠다.
저승과 이승 사이를 오가는 꿈길이었는데
내 유영(遊泳)은
낯익은 간판을 눈앞에 쏟는다.
그 이름 '서울'.
며칠을 비운사이 나를 찾았다고,
그럴 리 없는, 내 행적에 그들은
나를 하늘에 보냈고
어름해서 듣는 이,
때가 되었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 듣는 친구,
반겨 어쩔 줄 모르고.
곧 달려올 성 싶은 몸짓이 선한데
어쩔 수 없이, 전화통에 대고
비보를 전한다.
한 달을 비웠다는 친구다.
친구의 말이
아무개 친구는 집에서 죽고
아무개 친구는 병원에서 죽고
나 또한 소식 없어서
죽은 줄 알았다고.
그러니, 내 목소리가 날 살리고
목소리 전하는 친구도 내가 살렸다.
소식이 없으면 죽는 것.
사라진 것.
목소리 못 듣는 그 둘은
다 죽었다.
사십 여년을 못 만났으니
잊을 만도 하련만,
못 배기게 보고 싶었다.
웬 지, 보고 비비고 싶었다.
그래서
몇 달 전에 생생히 만났는데.
내가 보채어 함께 간 친구는 살았고
우리를 맞은 둘은 죽었다.
둘은 살고 둘은 죽었다.
이제 내 유영에서 돌아와 발 닿은 여기서
옛 과 이제.
이제와 내일.
삶과 죽음.
뒤얽힌
영원에서의 일순을 맛 본
친구의 베드남길,
내 터키 길이었다.
생각은 맴돌고 깊어만 간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