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던 집을
아주 떠나지 않는데
왠지 섭섭하다.
잡을 사람도
거들 사람도
없는 나,
어깨에 힘 빠진다.
반길 사람 없고
기다리는 이 없어도,
나는 이끌린다.
어쩐지
좋은 일 있을 것 같아
채비하고 눈감는다.
그렇게
하늘에 날아올랐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이스탄불’.
옛 스승의
칠판 그림과 몸짓 보여도
내 그리는 고향에는
빗대지질 않는다.
선사의 동굴에 서면,
내 조상
‘괸 돌집’은 가난했는데,
당 대의 영화는
이곳에도 있었구나, 싶어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면.
내 고향,
그 끝 간데없던 수평선이,
서유럽대륙을 멀리 밀어내며,
내 가슴 또 바닷가에서
긴 기지개를 켠다.
저승과 이승 사이를
오가는 꿈길이었는데
내 유영(遊泳)은
낯익은 간판을 눈앞에 쏟는다.
그 이름 '서울'.
며칠을 비운 사이 나를 찾았다고,
그럴 리 없는 내 행적에
그들은 나를 하늘에 보냈고
어름 해서 듣는 이,
때가 되었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 듣는 친구,
반겨 어쩔 줄 모르고.
곧 달려올 성싶은 몸짓이 선한데
어쩔 수 없이, 전화통에 대고
비보를 전한다.
한 달을 비웠다는 친구다.
친구는 말한다.
아무개 친구는 집에서 죽고
아무개 친구는 병원에서 죽고
나 또한 소식 없어서,
죽은 줄 알았다고.
그러니, 내 목소리가 날 살리고
목소리 전하는 친구도 내가 살렸다.
소식이 없으면 죽는 것.
사라진 것.
목소리 못 듣는 그 둘은
다 죽었다.
사십여 년을 못 만났으니
잊을 만도 하련만,
못 배기게 보고 싶었다.
왠지, 보고 비비고 싶었다.
그래서
몇 달 전에 생생히 만났는데.
내가 보채어 함께 간 친구는 살았고
우리를 맞은 둘은 죽었다.
둘은 살고 둘은 죽었다.
이제 내 유영에서 돌아와
발 닿은 여기서
옛 과 이제. 이제 와 내일.
삶과 죽음, 뒤얽힌
영원에서의 일순을 맛본
친구의 베트남 길,
나의 터키 길이었다.
생각은 맴돌고,
깊어만 간다.
또 시공(時空)을 주름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