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다 없애고 새로 장만하라, 누구는 아예 집을 팔고 딴 집으로 이사 가라, 누구는 다 남에게 집어 주라고들 하지만 당신의 뜻이 아니질 않소? 소중히 물려주어야 만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흐뭇해 할 것 아니요!
이제 발 씻을 물을 대야에 떠 발을 닦으려는데 문득 당신 발 생각이 나는구려. 그 대야에 담겼던 당신 발의 촉감을 내 발로 대신 만져보는 비참한 내 처지를 왜 당신이 만들었단 말이요!
백 가지가 당신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으련만, 가고 없는 빈집에 체취조차 맡을 옷가지도 애들 이모들이 와서 다 치워버렸구려. 그래도 나는 나만이 아는 그 정성 어린 가꿈의 참뜻을 헤아리며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당신의 손길을 더듬어 가오.
나는 죽기 전까지는 이 울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소. 울타리를 너무도 완벽하게, 너무도 치밀하게, 너무도 정성스럽게 짜놓았구려. 옳거니. 당신 가고 없어도 당신의 손길을 남겨서 내 외로움을 달래려는 마음이었음을 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당신을 어루만지며 시계 소리를 세고 있지 않소.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