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가 집안 조카 이광석(李光錫)의 글을 받았다. 제 글솜씨를 뽐내려고 한껏 기교를 부려 예닐곱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덕무가 이광석에게 답장을 썼다. 간추리면 이렇다. "옛날 수양제(隋煬帝)가 큰 누각을 짓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 놓고, 그 건물의 이름을 미루(迷樓)라고 했다더군. 자네 글이 꼭 그 짝일세. 참 멋있기는 하네만 뜻을 알 수가 없네. 얘기 하나 더 해 줄까? 어떤 이가 왕희지의 필법을 배워 초서를 아주 잘 썼다네. 양식이 떨어져 아침을 굶은 채 친구에게 쌀을 구걸하는 편지를 보냈다지. 그런데 그 친구가 초서를 못 읽어 저녁 때까지 쌀을 얻지 못했다네. 왕희지의 초서가 훌륭하긴 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고 나서 이덕무는 이광석에게 글쓰기의 요령을 다음 네 구절로 압축해서 설명했다. "엄정하나 막히지 않게 하고 시원해도 넘치지 않게 한다. 간략해도 뼈가 드러나지는 않고 상세하나 살집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嚴欲其不阻 暢欲其不流. 略而骨不露 詳而肉不滿.)"엄(嚴)은 글이 허튼 구석 없이 삼엄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뜻이 꺾이고 말이 막혀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할 말만 하더라도 이해를 방해해선 곤란하다. 창(暢)은 시원스럽게 할 말을 다 하는 것이다. 친절해서 모를 것이 없지만 자칫 과하면 글이 번지수를 잃고 딴 데로 떠내려가기 쉽다. 너무 삼엄해도 안 되고 너무 자세해도 곤란하다. 그 사이를 잘 잡아야 한다.
3구, 4구에서 한 번 더 반복했다. 약(略)은 군더더기 없이 간략한 것이다. 할 말만 남기면 짜임새가 야물지만 뼈만 남아 글의 그늘 과 여운이 사라진다. 뼈대가 단단해도 피골이 상접한 해골바가지에 눈길이 가겠는가? 상(詳)은 꼼꼼하고 상세한 것이다. 꼼꼼하고 자세히 쓰면 속은 시원하겠으나 볼살이 미어터지고 똥배가 출렁출렁해서 보기에 밉고 거동이 불편하다. 맵시가 나려면 뼈가 다 보이는 갈비씨도 안 되고 살이 흘러넘치는 뚱보도 곤란하다. 부족해도 안 되고 넘쳐도 못쓴다. 중간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