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보살
고맙습니다. 주렁주렁
붉은 고추 토마토
알알이 영근 옥수수며 강낭콩 애호박 햇빛과 비를 내리어 열매를 맺어주시니
땅속에서 기름진 흙 일궈준 지렁이와 열매 키운 무당벌레와 꽃가루 나른 벌들 묵묵히 긴 날 수고한 보살들이 고맙습니다.
삼복에도 밭에 오면 매미 먼저 울어주고 김매주고 북주며 흘린 땀만큼만 주시니 곡식알 한 알조차도 허투루 받지 않습니다. /진순분
콩 한 알이 익기까지 참으로 많은 울력이 있었다. 그중에도 안 보이는 일꾼은 작은 벌레들. 군말 없이 제 몫의 일에만 몰두하는 벌레보살들이다. 여름내 그렇게 엎드려 제 사는 일로 열매며 곡식을 키워준 벌레들 앞에 가을은 고개 숙이는 계절. 제 살붙이와 먹고 사는 게 곧 더불어 먹이는 일이 되거늘 어찌 하찮게만 대하리.
징그럽다고 호들갑 떨며 떨쳐낸 벌레들도 사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 그리고 그들만의 질서까지 갖고 있지 않던가. 더욱이 움직임만으로 다른 생명을 키우는 신비로운 울력이 되는 것을…. 지렁이가 기어야 숨구멍 트는 흙에도 기름기가 도는 것. 그러니 이 가을 우리는 미물로 치부했던 벌레, 그 묵언수행 보살들에게 잠시나마 깊이 고개 숙여야 하리. /정수자·시조시인/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