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서늘바람만도 고맙기 그지없다. 올여름 더위가 그만큼 무서웠던 게다. 그런 여름은 난폭한 거인이었을까. 움푹 패고 헐린 흔적들로 도처가 몸살이다. 강도 높은 태양과 난폭해진 큰비는 아스팔트까지 녹이고 갔다. 더 겸허하지 않으면 갈수록 세지는 기후변화 위력에 우리는 계속 휘둘릴 것이다. 강이고 산이고 도시고 몸살이 심해질 것이다.
그래도 강은 아직 흙탕 쓰레기를 다 받아 안고 흐른다. '제 속에 산 그림자를 껴안고' 가는 깊고 너른 품. 오랫동안 큰 산을 품고 흘렀으니 무엇인들 못 품으랴. 말없이 한결같기로는 바위도 마찬가지. 긴 시간을 견뎌온 풍모가 똑 무념무상의 거인 같다. 그게 '거인이 앉았던 자리에 가득한 고요 때문'이라면, 일희일비(一喜一悲) 않는 힘도 그런 고요의 깊이에서 나올 것. 유독 반가운 이 가을도 여름의 상처들을 잘 보듬어주길, 고요한 거인의 손길처럼. / /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