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가설식당 그늘 늙은 개가 하는 일은
온종일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것
턱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 가만히 듣거나
심심한 듯 벌렁 드러누워 멀뚱멀뚱 듣는다.
곡조의 애잔함 부스스 빠진 털에 다 배었다
희끗한 촉모 몇 올까지 마냥 젖었다
진작 목줄에서 놓여났지만, 어슬렁거릴 힘마저 없다
눈곱 낀 눈자위 그렁그렁, 가을 저수지 같다
노래를 틀어대는 주인아저씨보다
곡조의 처연함 몸으로 다 받아들인 개가
여가수의 노래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뼛속까지 사무친다는 게 저런 것이다
저 개는 다음 어느 생에선가 가수로 거듭날 게다
노래가 한 생애를 수술 바늘처럼 꿰뚫었다
/엄원태
식당 숟가락 통에 햇살이 비친다. 저것이 들락거렸을 수많은 입. 국물 홀짝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거룩하기로는 십자가보다 못할 것 없겠으나 때로 치욕이 헌 속옷보다 더 묻어나는 물건. 장마당을 돌아다니는 '가설 식당'의 그것이라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먹는 것에서 놓여날 수 없으니 모두가 한 번쯤은 이런 식당의 주인공이다.
털 빠진 늙은 개가 한식구다. '가을 저수지' 같은 눈을 하고 힘없이 한 구석에서 호객용으로 틀어주는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일이 일과다. '희로애락의 설움'을 한탄하는 '세 박자' 노래가 늙은 개의 신세와 뼛속까지 닮았다. 이 비천한 풍경 속에도 한 줄기 빛이 획, 스쳐간다. 우리도 그와 닮았는지 모른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